‘영부인(令夫人)’은 원래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에 대한 존칭으로 쓰이다가, 현대에는 대통령 부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선출직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영부인은 법적 직책이 아니다. 따라서 의전과 예우 규정은 있지만, 법적 책임과 권한은 전혀 없다. 하지만 정치 현실에서 영부인은 대통령에 대한 사적 영향력이 워낙 큰데다 실제로 최고 권력을 구성하는 핵심으로서 관행처럼 정치·사회적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영부인의 지위와 역할을 가장 인상적으로 구현한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 부인 고 육영수 여사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초대 영부인이자 유일한 외국인 영부인이었으나 공적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반면에 육 여사는 권위적이고 외골수였던 박 대통령을 목련처럼 온화한 기운으로 감싼 현숙한 부인 이미지에다 어린이와 장애인 등 약자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던 사회운동가로서 활동을 많이 해 생전에 ‘국모(國母)’칭호를 들었다.
전·현직 대통령의 영부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도 조사 결과, 육영수 여사가 과반수를 넘는 65.4%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민주화 이후 영부인의 역할이나 정체성도 바뀌었다. 김대중 대통령 부인 고 이희호 여사나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국모’대신 대통령과 동지적 지위와 역할을 한 사례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나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동지적 역할보다는 내조에 더 치중한 영부인으로 평가된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그 역할과 정체성이 바뀌고 있지만 영부인은 대선 후보의 러닝메이트란 점에서 언제든지 쟁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 영부인 검증이 핫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연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가 모 언론사 기자와 7시간 통화한 내역이 방송을 통해 공개돼 국민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이번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부인 김혜경씨가 황제의전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논란은 경기도청 전직 7급 주무관 A씨가 자신의 상관이었던 전직 5급 사무관 배씨와 나눈 문자 등을 언론에 제보하면서 시작됐다. 이 후보의 경기지사 시절 배씨와 A씨는 의전 업무를 위해 각각 비서실과 총무과 소속 별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A씨는 김씨의 약품 대리 처방, 음식 배달 등의 개인 심부름,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 등을 제기했다.
이 후보 측과 민주당은 가족 문제가 불거진 데 대해 사과하면서도 5급 사무관인 배씨가 7급 주무관이었던 A씨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며 김씨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배씨도 김씨와 무관하게 자신이 A씨에게 지시한 것이라고 했지만 궁색한 해명이다. 특히 공무원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경기도 법인카드를 생활비로 쓴 게 사실이라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행위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했다. 영부인 검증은 후보검증에 맞닿을 수 있다. 한 점 의혹없이 사실규명이 이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