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생물은 어떤 형태로든 경쟁을 하면서 산다. 사람이나 동물들이 서로 경쟁하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경쟁으로 인하여 서열도 정해지고 더 큰 이익을 챙기려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여 경쟁을 부정할 필요도 없고 경쟁을 부추길 것도 아니다. 어쩌다가 식물도 경쟁한다는 것을 듣고 좀 놀랐다. 고정된 장소에서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살아야 하는 식물이 경쟁할 수가 있을까. 더구나 생각이나 감정도 없이 주어진 토대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을 식물이 있을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식물도 경쟁한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예컨대 어떤 산에 다른 수종은 없이 한 종류의 나무만 있다고 하자. 빽빽하게 잘 자라는 듯해도 그 숲은 많이 약한 나무 군락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다른 여러 종류의 나무가 섞여 자란다면 서로가 경쟁하듯 건강한 숲을 이룬다고 한다. 왜냐면 수종마다 영양이라든가 수분의 정도, 혹은 일조량과 해충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필요를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뿌리와 가지, 잎, 줄기는 물론이요 키까지 유리하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땅 속에는 뿌리가 다양한 활동을 할 것이요 가지나 줄기는 일조량이 충분하도록 생장해야 하리라. 잎이나 고유한 향기는 해충 또는 유익충에 대처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같은 종류의 나무만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필요가 같다면 같은 조건을 나누어 가질 수밖에 없다. 공기, 수분, 햇빛, 바람, 온도 등등을 있는 그대로 갈라 먹어야 한다. 그러는 중에 약하거나 자리를 불리하게 잡은 나무는 자연스럽게 도태될 터이다. 나아가서 해충이나 유익충도 같은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므로 훨씬 단순한 생장을 할 것이다.
양식한 물고기보다 자연산을 더 좋게 여긴다거나 밭에서 재배한 인삼보다 자연에서 자란 산삼을 선호하는 까닭이 뭔지를 생각하게 한다.
만약에 고양이만 많으면 쥐도 많아야 하지만 고양이와 쥐가 섞여 있으면 굳이 많지 않아도 서로 약삭빠르게 잘 살 궁리를 하지 않을까. 그러면 궁리를 하는 측면과 그렇지 않은 상황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터이다.
이것이 동물의 세계에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식물도 그러한데 사람에게는 오죽하랴. 문명이 있고 지배력이 있고 지능과 언어까지 있으니 경쟁으로 치면 가장 처절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겠다.
안타까운 것은 같은 항목에서 경쟁이 심하다는 데 있다. 돈 때문에, 권력 때문에, 지위나 명예 때문에,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같은 목표를 두고 경쟁하면 나눠먹기 밖에 더 되겠는가. 경쟁하는 효과가 떨어지니 결과도 늘 부족할 뿐이다. 돈과 권력을 따로 경쟁한다면 어떨까? 당연히 해당 분야의 전문인이 차지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돈에 승리한 사람은 돈만 있고 권력은 전혀 없는가? 그렇지 않다. 돈으로 경쟁하여 이긴 사람은 돈이 많고 권력이 적을 뿐이다.
식물도 동물도 선한 경쟁을 하건만 유독 인간만 다투어 갈라먹기를 고집하고 있다. 사람이 경쟁을 하지 않을 수도 없지만 제 살 상하게 하는 경쟁보다는 다양한 경쟁을 하면 좋겠다. 이겨서 제 일인자가 되는 경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