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가을엔 詩를… 라틴아메리카 문학 거장 바예호의 첫 시집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1-10-14 19:50 게재일 2021-10-15 12면
스크랩버튼
‘조금밖에 죽지 않은 오후’<br/><br/>세사르 바예호 지음<br/>민음사 펴냄·시집·1만3천원<br/>
“사노라면 겪는 고통, 너무나 지독한…. 모르겠어!

신의 증오 같은 고통. 그 앞에선 가슴 아린

지난날이 밀물이 되어 온통

영혼에 고이는 듯…. 모르겠어!”

―‘검은 전령’, 세사르 바예호 ‘조금밖에 죽지 않은 오후’에서

 

‘조금밖에 죽지 않은 오후’(민음사)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세사르 바예호의 대표 시집이다.

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 저널리스트였던 바예호는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멕시코의 옥타비오 파스와 더불어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단을 대표한다.

바예호의 시에는 상징이나 전원적 이미지로 감정을 표현하는 인디오 특유의 상징주의적 요소 외에도 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요소들이 풍부하게 구현된다. 바예호 시의 고유성은 시인이 자신의 서정을 그려냄에 있어 라틴아메리카 시 세계의 언어를 새로이 창조했다는 점에 있다.

바예호의 시들은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닮았다. 바예호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여러 차례 중단하고 생업에 종사해야 했으며, 20대 후반에는 정치적 소요에 휘말려 투옥됐고, 석방된 후에는 평생을 파리에서 궁핍하게 살았다. ‘조금밖에 죽지 않은 오후’는 바예호의 첫 시집으로 삶의 고통과 좌절, 실존의 그늘을 토로한다. 이렇듯 굴곡진 삶은 그의 시에도 반영돼 작품 전반에 우울하고 어두운 정서가 깔려 있다.

평생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았던 시인은 “사노라면 겪는 고통, 너무나 지독한…. 모르겠어!”라며 삶에 대한 좌절감과 염세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시인은 나르시시즘적인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에 비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며, 타인의 고단한 삶에 대한 책임감을 고백하기도 한다.

시인의 사랑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넘어 신성(神性)에까지 미친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바라보는 신 역시 창조주로서 탄식하며 마음 아파할 것을 짐작해 시에 녹여냈다. 바예호는 사회의 부조리와 고통을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의 차원까지 확장한 시인이었다.

바예호의 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위로와 용기를 준다. 그래서 바예호의 시는 혁명가가 힘의 논리에만 휘둘리지 않고 휴머니스트로서 남아 있도록 잡아 준다. /윤희정기자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