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 중에서 가장 빈도가 높은 두 가지를 간추려보면 코로나19 관련 보도와 차기 대선 주자 관련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둘 다 ‘어떻게 국민을 안전하고 바르게 섬길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응대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
‘공무’라는 어휘 자체가 공중을 위한 업무를 뜻하기 때문에 모든 공무원은 업무의 대상이 국민이어야 한다는 기본에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국민을 상대하다보면 별별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흡족하도록 맡은 업무를 처리하기란 대단히 어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맡은 바에 열과 성을 다할 수밖에 없는 직업도 공무원이 아닌가 한다.
특히 모든 국민을 상대로 가장 힘겨운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코로나19 관련 종사자들의 노고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어떤 한 부분에 애써 노력하면 그에 반하는 사람이 있고, 그 분야를 고려하면 또 다른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런 보도를 보노라면 미국의 유명한 공무원 ‘라 구아디아’를 떠올리게 한다. 법원 판사와 뉴욕시장을 맡았던 그의 놀라운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La Guardia Airport라는 공항 이름까지 생기게 했을까.
그의 명 판결이 있던 날, 법정에 참관한 사람들 마음이 한결같지는 않았다. 그의 판결이 옳다고 여긴 사람도 있었고 그르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뜬금없는 십 센트의 벌금까지 참관인들에게 부과했지만 아무도 싫어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원이 같은 마음이 되도록 하나로 묶어 준 판결이었다. 심지어 피고와 원고까지 공감하게 했으니 말이다.
사람의 생각이란 각양각색이어서 의견도 분분하지만, 같은 생각으로 공감되어지는 요건이 있다.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꿈틀거릴 때 아무도 그 사랑을 억누르지 않게 되고 긍휼한 마음으로 통일되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 어쩌고 해도 그 순서에 자신을 앞장세우면 반드시 반론에 맞서게 된다. 사랑은 남을 위해야 한다는 말이리라.
나는 선거 시기가 올 때마다 우스운 경우를 본다. 선거 전에는 재래시장이나 뒷골목까지 나타나 구십도 절을 하면서 성실한 머슴이 되겠다고 호소하고는 당선 후 자신의 권세나 명예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말이다. 어떻게 국민 없는 공무가 있으며 자신이 앞서는데 남을 사랑할 수가 있을까? 물론 모든 공무원이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차라리 봉사보다는 직장 개념으로 근무하는 말단공무원이 더 사랑스럽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예비후보들이 선별진료소 간호사 또는 자원봉사자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긍휼함에 차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4차 대유행을 치달리고 있는 요즘, 자연재해 측면에서 보면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누구를 지도하며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좋은 헌법이 있더라도 그 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소용없듯이, 감염병이 아무리 무섭다 하더라도 모든 국민이 하나같이 바이러스에 대처한다면 이기지 못할 것도 아니라고 본다. 우리 국민 전체가 스스로 공무원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