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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방송인 아닌 정치인으로 불러달라

등록일 2021-08-09 20:20 게재일 2021-08-1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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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

우리는 여전히 전쟁터 속에서 살고 있다. 6·25와 베트남전의 트라우마에 갇힌 60대 이상은 물론이고 30·40대에게도 멀리 중동전쟁 포성의 여운이 남아있어서일까. 출근길도 밥 먹으러 가는 길도 전쟁이요, 취업도 대학 가는 길도, 집 구하는 일까지 전쟁이다. 90년대 바그다드의 중동 전선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한 이진숙(전 대전MBC 사장)에게도 돌아온 조국 대한민국은 여전히 전쟁터다. 2년 전 고향 대구로 내려와 시내 한복판 오피스텔에 진을 친 이진숙은 이제 방송인 아닌 정치인으로 불러달라고 한다.

- 2020 도쿄올림픽의 3관왕 여자 양궁선수 안산의 앞머리 쇼트커트가 불러온 페미 논쟁이 일었다.

△논쟁에서 정작 안산은 없고 페미만 남았더라. 남성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여성 인권 보호와 양성평등의 의미로 쓰여야 할 페미니즘이 남성혐오와 동의어로 전의된 인상이다. 안산의 언어에서 나는 남성혐오 표현을 발견할 수 없었고 참으로 불건강한 논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산을 넘어 선 진영간 대립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 명쾌하다. 같은 시기 서울 종로 책방의 쥴리 벽화 문제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여성 비하를 넘어 심각하고 중대한 개인의 인격 침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냉정해져야 하겠다. 이 문제는 말로만 여성친화를 외치는 진보진영의 위선을 여지없이 폭로한 현장이다. 여성의 성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내로남불식 정권의 이중성이 드러난 것이라 생각한다.

- 이런 문제에서 여성가족부가 입 다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야당 일부에서 주장하는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에 대한 입장은.

△문제는 여성가족부의 존폐 여부보다 여가부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거다. 이 질문에 ‘일을 제대로 했다’고 답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성의 인권 향상과 성 평등 가치 확산이라는 당초 설립 취지를 위해 얼마나 기여했느냐. 제대로 못하니까 폐지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 문재인 정부 들어 여당 단체장들의 잇단 성 추문이 여가부 문제를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된 건 아닌가.

△그렇다. 지난해 8월 당시 여가부 장관은 박원순 오거돈 전 시장들의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냐는 질문에 “수사중인 사건의 죄명을 규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변해 여성들의 화를 돋우었다. 법적인 판단은 사법부에서 하더라도 여가부 장관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얘기했어야 했다. 당시 장관은 보호받아야 할 여성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보다 큰 권력, 임명권자를 의식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사건 관련 입장문에서 ‘고소인’ ‘피해 고소인’이라는 말을 써서 피해자는 물론 국민들의 분노를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 최근 우리 사회에 ‘Me Too’광풍이 몰아치면서 젠더(gender) 논쟁이 일어났다. 지방 출신 방송 기자로서, 여성으로서 경험을 들려 달라.

△소수자는 항상 불안하다. 10명 중 9명이 칼국수를 먹자고 하는데 혼자서 냉면을 먹자고 하면 냉면으로 결론나기는 힘들다. 이럴 때는 칼국수를 먹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칼국수와 냉면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내가 입사했던 1986년 동기 13명 중 2명이 여성이었다. 지방 출신에 지방대, 거기다 여성이었으니 말 그대로 ‘3중고’였다. 수습 때 특종도 했지만 수습 끝나고 부서배치에서 남들 다 간다는 사회부가 아닌 문화부로 발령이 났다. 다른 여기자는 국제부로 갔다. 시작 때부터 3중의 장애물에 포위돼 ‘잘 나가는’ 직장에서 생활하는 건 또 다른 전장이었고 전투였다.

- 여성이어서 부서배치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인가. 그러면 사회부 기자는 언제 했나.

△문화부에서 악바리처럼 일했고 그게 눈에 띄어 사회부로 배치 받았다. 새벽 네 시 기상, 네시 반 경찰 순회, 여섯 시 캡 보고 등 고된 일정 때문에 남자 기자들은 탈출하고 싶어하던 부서였다. 그러나 여기자들은 “사건기자도 못 한 주제에...”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그리고 ‘그들’과 같은 훈련을 받고 싶어서 사회부 배치를 원했다.

- 부서배치 불이익은 그 후로도 직장 생활 내내 계속되었나.

△입사해서는 사회부 기자가 되고 싶었고 나중에는 국제문제 전문기자, 특파원이 되고 싶었다. 1990년대 중반쯤인가, 당시 워싱턴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대기업 뉴욕지사장으로부터 “이 기자는 절대 워싱턴 특파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누가 여성에게 워싱턴 특파원 자리를 주겠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고 10년 뒤에야 나는 워싱턴 특파원이 되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 지금도 여성계에서는 여전히 남녀불평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남성들도 있다. 유리천장 논리에는 동의하나.

△동의한다. 수치가 말해 주고 있지 않는가.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1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156개국 중 102위를 기록했다. 방글라데시(65) 우간다(66) 케냐(95) 보다도 못한 지위다. 경제활동참여 기회 부문에서 123위, 교육 부문에서 104위였다.

- 문재인 정부가 여성친화적이라고 자랑했는데 정치 부문에서 여성정책은 어떤가.

△좌파 정부가 비교적 잘 하고 있는 것이 여성의 정치 참여라고 칭찬해주고 싶다. 외교부에 강경화, 법무부에 추미애, 교육부에 유은혜, 국토교통부에 김현미, 고용노동부에 김영주 등 이른바 주요부처에 여성을 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우파 정부와 구분된다. 우파가 보수꼴통이라는 프레임을 쓰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여성 정책이기 때문이다.

- 종군기자의 경력으로 전쟁을 체험했다. 징병제인 우리나라에서 여성에게도 군대 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걸프전(1991), 소말리아 내전(1993), 동티모르 내전(1999), 이라크전(2003) 등을 취재했다. 시체가 피투성이 부상자들과 뒤엉켜 나뒹구는 절망과 폐허의 전장을 목격하고는 피지도 않는 담배를 세 개피나 피웠던 기억도 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국방의 의무를 위해 군복무하는 데 대한 2030세대 일부 청년 남성들의 저항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진학이나 취업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호경기 상황이라면 남성들의 불만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취업이 치열해지면서 불만의 타깃이 여성으로 향한 점도 있지 않을까 추정해 본다.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라는 절차가 필요하다. 모병제로 점차 이동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점차적으로 모병 규모를 늘려 가면 어떨까 생각한다. 말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다.

- 위기에 강한 리더십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그 배경이 궁금하다.

△세상에 전쟁만한 위기는 없다. 그 전쟁을 세상에 알린 것이 나 이진숙이다. 종군기자로서 소속사 MBC에는 특종을 안겨줬고 그걸로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 이진숙의 MBC에는 나쁜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당시 사장(김재철)이 MB 정권의 충견이라는 비난이 있었고 이진숙이 그 하수인이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2012년 MBC가 노조의 170일간 장기 파업이라는 최대 위기에 직면했을 때 홍보국장과 기획본부장을 맡았다. 진보성향 노조가 악의적인 선동과 마타도어식 허위 주장을 펼쳤지만 보수적 일부 우파 간부들 조차 자신이 타깃이 되는 것이 두려워 비겁하게 숨었다.

파업이 70일 넘고 100일을 넘어서자 ‘불법 정치 파업이다’라고 주장하던 간부들조차 ‘노조가 이기면 어쩌지...’라거나 일부 간부들이 뒤로 노조에 격려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노조가 허위 주장 노보를 내면 홍보국장은 층층시하 절차를 거치느라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없었다. 기획본부장이 되어 사장에게 대외대응의 전권을 허락받은 뒤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노조의 허위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항복을 받아냈다. MBC를 구했다는 응원 문자를 많이 받기도 했고 ‘이다르크’라거나 ‘김사장의 장세동’이라는 별명도 그 때 얻었다.

- 방송인에서 정치계에 뛰어들었다. 언제, 무엇을 하겠다고 정치에 입문했나.

△자유한국당의 인재영입케이스로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문화권력의 횡포를 목격하고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불건강한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신념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문화는 미래 세대를 키워내는 자양분이자 토양이다. 나는 우리 딸이, 우리의 미래 세대가 왜곡된 이념과 왜곡된 문화 속에서 살아가도록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 기자 출신이어서 그런가. 공무원이나 관료 출신 정치인에 대해 좋은 감정은 아닌 것 같다. 대구의 정치인에 대한 평가가 아주 낮다.

△공무원의 철밥통은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일 더한다고 월급 더 주나” 하는 관념에 익숙한 게 공무원이다. 그런 공직자는 대구 같은 위기의 도시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는 대구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구는 청년들이 빠져 나가는 도시다. 늙어가는 도시라는 말이다. 더 이상 미래가 없는 도시다. 지금 대구에는 위기를 관리할 리더십이 필요하다.

- 대구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가야 한다고 보나.

△멀리 봐야 멀리 간다고 했다. 대한민국 안에서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나는 MBC 본사에서 일했고 남편은 현대자동차에서 퇴직했다. MBC는 1961년, 현대차는 1967년 설립했다. 한국의 특수 상황에서 정부 통제와 보호를 받았던 MBC는 현재 위축돼 있는 반면 생존을 위해 전 세계 기업과 경쟁했던 현대자동차는 명실상부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현대자동차의 도약 비결은 경쟁력이었다. 대구가 글로벌 시티로 부상하기 위해서, 경쟁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 이진숙 (60)

대구에서 남도초 구남여중 신명여고를 나와 경북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잠시 교단에 섰다.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과 존스홉킨스국제학대학원(SAIS)을 졸업했다. MBC에 기자로 입사해서 걸프전 종군기자로 명성을 떨치고 워싱턴 특파원과 워싱턴지사장, MBC기획본부장, 보도본부장, 대전MBC사장에서 퇴직하고는 정치에 띄어들었다.

/이경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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