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수 대구시의사회장
숙지는가 싶더니 또 다른 변이가 생겨나 지구촌을 긴장시키는 코로나19는 확산과 진정을 반복하면서 어느덧 일상이 됐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를 밑바탕에서부터 흔들며 바꾸어놓았는데 의료계야말로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다. 코로나19가 대구를 강타했을 때 그 최전선에 대구의 의료인들이 있었고 D방역은 세계적으로 K방역의 모델이 되었다.
환자 진료를 마치자마자 한달음에 의사회관으로 달려온 정홍수 대구시의사회장은 ‘코로나19가 언제쯤 끝이 날 것 같냐’는 질문에 “내년이면 집단 면역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격진료는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서 벽지와 오지 등으로 제한하고 1차적으로 지역의원부터 원격진료를 실시해야 한다. 대구 의료 수준은 서울 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뒤처지지 않는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
-지금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무섭다. 종식을 위해 의사회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대구시의사회는 백신접종지원센터를 직접 운영하고 많은 의사들이 위탁의료기관에 참여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국가적 현안인 코로나 19의 종식을 위해 뛰고 있다. 또 시민들이 안심하고 백신 접종에 참여하도록 유튜브를 제작 보급하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시민들에게 객관적이고 검증된 의학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양상이 처음보다 많이 달라졌다. 너도 나도 백신 접종을 하겠다고 하니. 그런데 처음에는 왜 그렇게 접종 예약률이 떨어졌을까. 지금 백신 공급 사정도 원활하지 못한 것 아닌가.
△백신 접종 부작용에 대한 언론의 지나친 관심이 시민들에게 부정적 여론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올 3월만 해도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률이 아프리카 후진국보다 낮은 세계 100위권 밖이었다.
백신 공급에 문제가 생긴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엔 방역에 치중했고 또 코로나 치료제 개발에 공을 들였던 때문인 것 같다. 방향이 달랐던 것이다. 백신 아닌 치료제 개발로, 결과적으로 오판한 셈이 됐다.
-정치권에서 수술실 CCTV 설치를 법제화하려고 하는데 의료계에서는 반대하는 것 같다. 당연히 CCTV를 설치해서 환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술실의 CCTV 설치 문제는 정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환자들에게 득보다 실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환자의 프라이버시나 인권 측면에서도. 한 예로 지금도 환자의 신상을 담은 영상물이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지 않나.
의료계에도 문제가 크다. 감시 받으면서 적극적인 수술을 하려 않을 것이다. 수련의 교육에도 문제가 생긴다. 의료기술의 발전과 의료 수준 향상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의 80% 이상이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한다고 들었다. 대리수술 등 최근 의사들의 일탈도 문제가 심각하다.
△공직자들이 근무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국회의원 사무실에 CCTV를 설치하자는 설문조사를 해보면 찬성률이 훨씬 높게 나올 것이다. 대리수술 등 불법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수술실 입구에 CCTV를 설치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이 아니라 무엇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공감의 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의사의 의견도 들어보고 시범사업 등 단계를 거쳐 누가 생각해도 타당한 방법으로 진행돼야 한다.
일부 의사들의 일탈 문제는 사회적 논의 이전에 의사회 차원에서 자율적 정화를 강화하고 있다. 대리수술 뿐 아니라 사무장병원 운영이나 불법 환자 유인 등에 대해서도 의사회는 자율정화위원회를 통해 고발하고 면허 박탈까지도 조처하는 등 강력히 처리해 나갈 것이다.
-최근 정부가 의원급의 비급여 진료비 공개를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시대적 추세이고 또 의료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인 듯 보이는데 의사회의 입장은 어떤가.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는 최선의 진료가 아닌 보편적 진료를 추구하고 있다. 환자는 누구나 최선의 진료를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현실은 한정된 보험 재원으로 모든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없다.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가 전면 시행되어 진료비가 통제되면 앞으로는 환자가 최선의 진료를 받고 싶어도 불가능해 질 수 있다.
과도한 규제는 결국 의료의 질을 낮추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정부가 비급여 진료비 공개를 통해 진료비를 통제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도 된다.
-원격진료에 대한 의료계의 입장은 무엇인가.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진료는 국민들의 의료 편의를 위해 가야 할 길인 것 같은데?
△진료의 기본 원칙은 대면진료다. 우리나라 의료 접근성과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환자의 편의성과 경제성을 내세우며 비대면 진료를 추진하고 있다. 원격 진료는 이득보다 오진과 그에 따른 책임소재 불분명 등 단점도 고려해야 한다. 의료산업화 측면이 아니라 보건의료 정책 차원에서 추진해야 하고 대면진료의 보완 수단이어야 한다.
-비대면 원격진료를 반대하는 것은 의사들의 이기주의와 기득권 지키기인 것 같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면서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 좋은 것 아닌가.
△모든 것이 대형화되고 서울로 집중되는 현실에서 의료마저 서울 큰 병원으로 집중되면 의료전달체계가 왜곡되고 결국 국민들이 피해자가 된다. 서울대병원에서 전국 명의들을 고용해서 도서벽지에서 강원도 오지까지 환자들의 원격진료를 맡게 되면 동네의원들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병원 문턱이 높아 간단한 진료에도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는 다른 나라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았나. 우리에게도 현실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래서 진짜 원격진료가 필요한 곳은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서 벽지와 오지 등으로 제한하고 1차적으로 지역의원에서부터 원격진료를 실시하자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니 의사회는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에 반대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을 법으로 규정하려는 정책 당국 탓이 더 크다. 부동산 정책이 그걸 대변해준다. 그때마다 많은 규제를 만들었지만 부동산 정책이 결국 실패하지 않았나. 의료정책은 그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의사 문제가 생기니 의사면허관리법으로 면허를 규제하려 하고, 대리수술 문제가 생기니 CCTV 설치법을 만들려 하고, 성범죄특별법, 실손보험청구간소화법, 의료기사법, 안경사법, 간호사법, 물리치료사법 등 현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지 않고 법으로 해결하려 하니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한번 법이 제정되면 부작용으로 폐기하기까지 10년 20년이 걸리니 의사회가 법 제정 이전에 충분히 논의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메디시티 대구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의료산업 육성을 추진하지만 주위에서는 아직도 대구의 의료기술을 믿지 못하고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많은 것 같다. 솔직히 대구 의료계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대구의 의료 수준은 서울 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뒤처지지 않는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 한국인에게 흔한 위암이나 대장암의 경우 서울과 대구의 대학병원 간 치료 성적이 동등하다는 연구 결과도 논문으로도 확인됐다. 또 지역 환자의 지역병원 입원 치료를 말하는 입원환자의 자체 충족률은 대구가 82%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근거 없는 소문이나 추측만으로 지역 의료 수준을 낮춰 보는 인식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중병이나 희귀병은 서울 대형병원으로 가야 하지만.
이 부분에서 지역 상급병원의 능동적인 자세 전환도 필요하다. 특정 분야에서 실력과 명망 있는 교수와 특화된 병원의 적극적인 홍보로 지역에서도 스타 교수를 키워야 한다.
-지역 의료기관의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의사회가 지역의 5개 상급종합병원과 함께 ‘지역의료발전과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주제로 공청회도 갖고 함께 종합체육대회를 열어 친선을 다지는 등 지역의료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네의원에서 환자를 서울 아닌 지역 종합병원 전문의를 소개하거나 직접 안내하고 종합병원은 가벼운 환자를 동네의원으로 보내주고 있다. 대구에서 서울로 빠져나가는 의료비가 연간 5천억원으로 추산되고 교통비 등을 합하면 연간 1조원이 증발한다. 서울에서 수술하고 지역에서 예후 진료를 받는 환자들로서는 사실 피해를 보는 것이다. 종합병원이 혈압약이나 정형외과 약을 6개월, 10개월씩 처방해주는 행위도 지양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지방과 서울 등 대도시간 의사 수급 불균형이 심각하다. 지난해에는 공공의료기관 설립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국민보건 차원에서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거나 지역공공의과대학 설립은 필요한 것 같은데….
△도시와 지방 간 의사수급 불균형은 의사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가 지방에서 의원을 유지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현재 의료 시스템으로는 지방에서 의원 경영상 유지가 안 되니 경쟁이 심하더라도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개원하려는 거다. 의사숫자를 아무리 늘려봐야 도시에서 미용 등 비보험 진료 의사만 늘어나지 지방에서 개원하는 의사는 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매년 배출되는 의사만으로도 몇 년 후면 한국 인구증가율 대비 의사 공급이 넘쳐 날 것이라는 OECD 통계도 있다. 굳이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구의 경우 시민 누구든지 예약 없이 당일 어떤 전문의의 진료든지 받을 수 있다. 심지어 같은 질병으로 하루에 여러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환자도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다.
-결국 우리 의료수가가 현실적으로 너무 낮게 책정돼 있다는 것인가.
△다 아는 이야기다. 지방에 흉부외과 산부인과 일반외과 등 필수 의료인력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막상 이들 전문의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도시에서 자기 전공과는 상관없는 미용관련 진료를 하고 있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근본적으로 지방병원에서는 내원하는 환자수가 적은 흉부외과 등을 개설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의사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저수가 때문에 의사들이 일 할 자리가 부족한 것이다. 아주대병원의 이국종 교수 사례가 증명해 보였다.
/이경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