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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브리스

등록일 2021-06-10 18:37 게재일 2021-06-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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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도전과 응전’으로 유명한 20세기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 바꾸는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그 성공으로 인해 교만해져서 남의 말에 귀를 막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다 판단력을 잃게 되는 것’을 가리켜 ‘휴브리스’라고 불렀다. 이후 휴브리스는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소수가 기득권층이 된 다음 자만해 자멸하는 경우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휴브리스는 어느 시대, 어떤 집단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회현상이다.

요즘 여야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는 부동산 투기의혹 조사를 둘러싼 논란이 휴브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먼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를 통해 부동산 투기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소속 의원 12명 전원에 대해 ‘탈당 권유(비례대표는 출당)’라는 극약처방을 내려 충격을 줬다. 예상을 뛰어넘는 강수였다. 민주당의 조치는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을 계기로 여권 전체가 ‘부동산 투기 내로남불’프레임에 걸려 이대로는 대선이 물건너간다는 위기감이 고조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자당 소속 국회의원들에 대한 강경조치 직후 곧바로 야당에 화살을 돌려 대대적인 역공에 나섰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모두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를 받으라고 촉구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민주당 재선 의원 출신의 전현희 위원장이 이끌고 있는 국민권익원회에 공정한 조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감사원 감사를 주장했다. 감사원은 당초부터 “감사원법 24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다”라며 조사불가 입장을 밝혀왔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자체 법률 검토 결과 감사원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감사원 조사의뢰를 강행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대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송영길 대표는 “국민의힘이 사실상 전수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비판했고, 윤호중 원내대표는 “권익위 조사에 응하는 것이 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정의당·열린민주당·국민의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 등 나머지 5개 원내 정당이 권익위에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를 의뢰하는 바람에 외통수에 몰렸다. ‘버티기’, ‘꼼수’라는 비판도 아프고, 따갑다. 그렇다고 권익위 조사카드를 덥석 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당내에 부동산 부자가 많다는 점이 국민의힘을 불안하게 한다.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공개한 21대 국회 부동산 재산 상위 10명 중 7명이 국민의힘 소속이었고, 민주당은 2명, 무소속은 1명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국민의힘은 판돈(?)을 올렸다.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장·차관, 더 나아가 지자체장과 지방의원 등 모든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부동산 전수조사 시행을 촉구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역시 10일 여야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모든 고위공직자에 대한 부동산 전수조사를 제안했다. 과연 누가 휴브리스의 함정에 빠져들까. 정치권의 한판 드잡이질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속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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