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누리에 생명의 소리가 가득 차 넘치는 6월의 시작이다. 날이 갈수록 푸르싱싱함은 짙어 가는데 보리는 어느새 누렇게 익어간다. 보리가 익으면 타작을 해서 수확하는 이맘 때를 맥추(麥秋)라고도 하지만, 가난하고 힘겨웠던 시대의 ‘보릿고개’라는 춘궁기의 비애와 궁핍의 설움이 서린 때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신산의 세월을 지나 비록 코로나의 난국이지만, 생활 전반적으로는 예전에 비해 여유와 풍족의 삶을 살아가는 요즘이 아닌가 싶다.
즐기거나 누릴 것들이 많은 유월이라서 누리달이라 했던가?
초목은 무성해지고 밭에는 곡식들이 착하게 자라고 있는가 하면, 무논엔 어린 모들이 가녀린 몸짓이나마 가을날의 결실을 기약하며 초록의 언어를 쓰는 듯하다. 맑푸른 날씨에 들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누비다 보면 어느새 마음 속의 근심도, 코로나의 시달림도 가벼운 바람 결에 날아가는 듯하다.
지역별 여러 축제나 행사, 작은 모임 등이 코로나의 괴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취소되거나 연기되어 침체와 단절을 더해가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코로나의 사슬에 묶여 긴장과 우울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할 것인가?
하루에도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변화무쌍한 날씨처럼, 시대와 상황은 늘 바뀌고 달라지기 마련이다. 변화에 유연한 적응과 방역의 선제적인 대처 속에 목적과 취지에 맞는 아이템을 특성화시켜 나간다면, 얼마든지 비대면으로 소통하고 공유하며 누리고 즐길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6월은 기리는 달이기도 하다. 나라를 지키고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 위해 이 땅의 무수한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누세월 피로 물든 산하는 침묵하고 있지만, 누대에 걸쳐 우리는 위국헌신의 넋과 뜻을 기리고 잊어서는 안된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해마다 6월이면 국립묘지에서는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엄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기 위해 한달 간 묘역 전개소에 작은 태극기를 꽂아 둔다고 한다.
호국보훈의 얼과 뜻을 되새기기 위해 필자는 최근 동료들과 함께 인근의 영천호국원엘 가서 비석 닦기와 태극기 꽂기 등의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
영천호국원은 수많은 국가유공자와 참전용사들이 안장된 국립묘지이다. 봉사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호국원 관리자의 안내에 따라 현충탑 앞 분향소에서 단체로 참배를 한 후, 3구역 봉안묘역에서 5천300여기의 묘비를 일일이 닦고 미니 태극기를 가지런히 꽂으며 추념의 마음을 되뇌었다. 가족단위로 참가한 봉사자들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정성스럽게 태극기를 꽂고 비석을 닦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갸륵한 마음을 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여겨졌다.
새로운 누림과 면밀한 기림으로 활기와 존숭을 더해가는 나날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리고 즐기되 신중하고 요란하지 않게, 기리고 위하되 경건하고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평온한 유월을 보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