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본 사건의 재구성 -누구의 잘못인가<br/>대구지법 포항지원 “폭행치사죄는 사망 결과 예견 가능성 있어야<br/>피해자의 치료거부·보호자 방임이 피해확대 원인 된 것” 양형 이유
A씨(29)와 B군(17)은 사촌형제 사이였다. A씨는 평소 사고뭉치였던 B군이 사고를 칠 때마다 나서서 해결해줬다. 채무도 대신 갚아주고, B군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대신 피해자에게 찾아가 무릎을 꿇기도 했다. 비록 사촌형이었지만 혈육이 많지 않은 B군에게 A씨는 친형이자 보호자 이상의 존재였다. 그랬던 A씨가 훈육을 명목으로 B군을 심하게 때렸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B군은 10여일 뒤 숨을 거뒀다. A씨는 B군을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 즉 상해치사 혐의를 받아 재판에 넘겨졌다.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권순향)는 지난 26일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집행유예기간에 저지른 범행이었고, 형법에서 상해치사의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을 상해로 판단했다. 가장 가까운 관계였던 둘 사이에 있었던 폭력과 사망으로 얼룩진 이 사건에서 무엇이 재판부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비극(悲劇)’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5월 9일 오후 5시께 B군은 사촌형인 A씨의 집에 놀러와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갑자기 B군이 A씨에게 “돈을 갚아달라”고 했다. 중고나라에서 사기를 쳤고, 선배들에게 돈을 빌렸는데 이자가 엄청 불어나 감당할 수 없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평소에도 친구나 선배들에게 돈을 빌려 인터넷 도박을 하거나, 중고나라에서 물품사기 범행을 해온 B군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던 A씨였다. 한 차례 울컥함을 참아낸 A씨는 B군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보자고 했다. 이미 흥분해있던 A씨가 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화(火)를 불렀다.
B군의 휴대폰에는 인터넷 도박으로 돈을 빌린 차용증 등과 함께 여성의 은밀한 신체 부위를 촬영한 동영상도 있었다. 이미 성폭력 혐의로 소년보호사건에 송치, 재판을 받는 중이었던 B군이었다. B군의 휴대폰을 본 A씨는 즉각 집에 있던 나무빗자루로 B군의 팔과 엉덩이, 허벅지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A씨는 B군의 아버지인 C씨에게 “훈육 차원에서 B군을 때렸다”고 말했다.
이날 이후 둘의 관계가 어색하거나 불편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B군은 A씨와 C씨에게 “형, 이제 나 달라졌다. 이제 아빠랑 형에게 폐 안끼치고 피해 안가게 행실 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B군의 몸 상태는 상처 부위에서 진물이 나올 정도로 급격하게 악화됐다. 5월 20일에는 학교에서 쓰러질 만큼 상황이 안좋아졌고, 이날 조퇴한 이후에는 학교도 가지 못했다. A씨는 22일 오전 집안에 홀로 방치돼 있던 B군을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오전 11시 28분께 패혈증 및 배안 출혈 등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폭행치사죄는 원인과 결과의 상당인과관계, 사망 결과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상해치사죄의 경우도 적용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B군이 치료를 거부하거나 보호자의 방임 등으로 인해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한 것이 피해확대에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A씨는 이 사건으로 가깝게 지내던 사촌동생을 잃게 됐고, 자신의 행위가 원인이 돼 B군이 사망했다는 후회와 자책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을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아동복지법위반(아동유기·방임) 혐의로 함께 재판을 받은 아버지 C씨에게는 보호자로서 B군이 상해 피해로 신체적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하지 않은 죄를 물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했다.
/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