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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박(車泊)

등록일 2021-05-23 20:00 게재일 2021-05-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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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br>포항예총 회장
류영재포항예총 회장

방황이 일상이었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함께 무전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간단한 취사도구와 얇은 텐트를 짊어지고 떠났으니 일종의 캠핑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워낙에 돈이 없기도 했지만 명색 무전여행이었으니 당연히 빈주머니여서 가능하면 걸었고, 버스나 기차를 무임승차하거나 요금을 구걸해 해결하기도 했다. 해인사 부근을 돌아오는 정도였으니 오늘날이라면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닌데 천신만고 하였고, 그 고난의 길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젊음과 친구에 대한 믿음이었다. 무모한 일이었고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귀한 경험이었으며 내 삶의 자양이 된 소중한 추억이다. 궁핍하던 시절이었으나 인심은 넉넉했고, 춥지 않은 계절을 택했으니 어디에다 잠자리를 정하더라도 추위에 떨지는 않을 것이며, 사회안전망이 최소한의 안전은 지켜줄 것이라는 막연한 신뢰가 믿는 구석의 전부였다. 해인사에서는 입장료를 내지 않고 경내에 잠입하기 위하여 험악한 산길을 우회하느라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경주 남산 일대를 휘돌다 옥룡암 입구에 살던 고모네를 찾아가서 밥도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올 차비를 얻기도 했다.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고모님 댁 방문을 추억하며 지금은 멀리 서산에서 살고 계시는 늙은 고모님의 안부가 염려되어 종종 전화를 드리는데, 이제 귀까지 어두우셔서 전화로 소통하기가 어려운 지경이니 세월이 무상함을 실감하게 된다. 캠핑이라 하면 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문명 세상을 떠나 자연의 품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서 자연과 더불어 즐기면서 심신을 수양하는 캠핑은 꽤 괜찮은 레저 활동이다. 더구나 요즘은 오랜 코로나로 인하여 지쳐버린 심신을 달래 줄 탈출구가 필요한 때인지라 가족들의 휴일 여가활동으로 인기다. 요즘은 ‘차박’이 대세라 한다. 차 안에서 먹고 자면서, 자연과 더불어 휴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코로나 시대 비대면 여가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레저 활동으로 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SUV자동차의 수요도 많아졌고, 드물게 보이던 캠핑카가 요즘은 도심의 골목에서나 한가한 주택가의 공원 주차장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다. 자연을 즐기겠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문제는 환경이다. ‘차박’하기 좋은 동해안 곳곳이 버려지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하였다.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지친 심신을 치유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탁 트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나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은 금방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쓰레기가 쌓여 간다. 각종 술병과 음료 캔, 먹다 남은 음식물까지 여러 종류의 쓰레기가 뒤섞여 있고, 화장실에 남겨진 시민의식도 낙제점이다. “쓰레기만 갖다 버리면 또 괜찮아. 변기에다가 음식물 넣어서 막혀가지고…. 엉망으로 해 놓지요.” 청소용역 직원의 하소연이 듣기 민망하다. 지자체마다 이달부터 시간제 공공 근로자를 더 많이, 더 자주 투입하고 있지만, 매일 반복되는 무질서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란다. 비대면 시대에 대세로 떠오른 ‘차박’과 환경문제, 근본적인 대책은 바로 시민의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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