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헤라클레스가 길을 가다 조그만한 사과를 발견했다. 하찮은 사과가 길을 막는다는 생각에 발로 툭 찼다. 사과는 길밖으로 사라지지 않고 곱절로 커졌다. 화가 난 헤라클레스가 방망이로 때리자 사과는 더 커졌다. 때리면 때릴수록 커지더니 아예 길을 막아버렸다. 헤라클레스가 화를 참지못한 채 집채만한 사과와 씨름하고 있을 때 ‘지혜의 여신’아테네가 나타났다. 여신은 사과에게 다정하게 노래를 불러주면서 어루만졌다. 그러자 사과는 원래의 모습으로 작아졌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분노의 사과’이야기다.
최근 정치판에서 헤라클레스가 방망이로 사과를 때린 것과 같은 현상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우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윤 전 총장은 울산시장 선거개입의혹사건과 월성원전 사건 등에 대해 수사를 지시하면서 현 정부와 각을 세웠고,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이 윤 전 총장을 때리면 때릴수록 ‘살아있는 권력도 봐주지 않고 수사한 검찰총장’이란 그의 명성은 산처럼 높아졌다. 급기야 총장직을 물러난 현재,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여야를 통틀어 1위로 치솟는 이변이 일어났다.
야권의 또 다른 대권주자로 회자되는 최재형 감사원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적절성에 관한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여권이 강도높은 비판공세를 퍼부었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 원장을 향해 “집을 잘 지키라고 했더니 아예 안방을 차지하려 든다”고 공격할 정도였다. 그 결과 최 원장은 원칙을 지키는 ‘반문 투사’가 됐다. 여권이 휘두른 방망이 덕분에 유명해진 셈이다.
평범한 월급쟁이 ‘진인 조은산(필명)’이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것도 같은 코스를 밟았다. 그가 상소문 형식의 시무7조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처음 올렸을 때는 동의자 수가 2만명도 되지 않을 정도로 국민들의 호응이 미미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보름동안 조회를 막았고, 이 사실이 언론의 보도로 알려지면서 뒤늦게 공개되자 재공개 사흘 만에 청원인이 20배로 불어나 40만명을 넘었고, ‘시무7조 신드롬’으로 번졌다.
지난 10일 취임4주년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대통령이 현 정권에 관련된 울산시장 선거개입의혹, 월성원전 사건 등에 성역없이 살아있는 권력이라도 봐주지 말고,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김오수 후보자에게 공개적으로 지시할 의향이 없느냐.” 문 대통령은 “원전 수사 등 여러 가지 수사를 보더라도 이제 검찰은 별로 청와대 권력을 겁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냥 “검찰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말고 철저히 수사하면 된다”라고 명쾌한 답을 내놨으면 좋았을 것을….
야권은 즉각 “공정한 수사지시의 의지가 없음을 다시 밝힌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구나 청와대 관련 사건 검찰수사팀은 인사조치로 공중분해된 상태다.
현 정부는 아직도 헤라클레스의 사과가 길을 막은 이유를 모르는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