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해결해 줄 것 같아!”
말에는 어조가 있다. 특히 학생들이 학교에 대해 하는 말에는 아이들의 감정이 그대로 살아있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였지만, “같아”라는 말 안에는 체념과 불신, 그리고 분노가 담겨 있었다. 이 학생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학교는 이제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더 정확히 말해서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문제를 생산하는 곳이 되었다.
학교가 죽은 지는 오래전이다. 물론 필자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학교의 모습을 보면 자신들의 생각을 고집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침부터 운동장 7바퀴 돌았어. 하라니까 했는데,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 하겠더라.”
가만히 듣던 친구로 보이는 아이가 라면을 건져 올리던 젓가락을 내리고 이유를 물었다.
“교복 위에 후드티 입어서. 근데 이해할 수 없는 건 지퍼가 있는 후드티는 괜찮다는 거야.”
그날은 분명 추웠다. 뉴스는 연일 이상 한파에 따른 사건 사고 소식을 보도하였다. 굳이 뉴스를 보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한용품으로 온몸을 감싼 사람들의 모습에서 추위의 강도를 알 수 있었다. 필자는 옷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학생을 보았다. 그 학생은 추울 정도로 너무도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벌을 받았다니, 필자가 더 화가 났다.
“화장 규정 등 다른 규정은 그래도 이해하겠어. 그런데 복장 규정은 도저히 이해가 안 돼!”
“그래도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방법을 찾아 주시지 않을까? 날씨가 정말 춥잖아!”
어떤 답을 할지 필자는 귀를 최대한 열고 기다렸다. 학생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학교가 해결해 줄 것 같아!”
학생의 말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 화가 가득 묻어 있을 법도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차분했다. 모든 것을 단념했을 때, 기대감이라고는 전혀 없을 때 나오는 어조였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은 괜한 것에 시간을 빼앗겼다는 듯 빠르게 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학원 시간에 늦었다며 자신들의 자리를 치우고 편의점 점원에게 인사를 하고는 학원을 향해 뛰어갔다.
학생들이 떠난 자리에는 강추위보다 더 매서운 학교에 대한 불신만 가득했다. 추운 날씨에 운동장을 도는 학생의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융통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곳이 학교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그래놓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두루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겠다니, 대한민국 교사들이시여, 이 어찌 부끄럽지 아니한가!
여러 이유에서 규정은 필요하다. 그런데 법을 자기들 편한 대로 주무르는 정부나 거기에 속한 일부 인권 단체가 말하는 모든 학생이 만족 하는 규정은 없다. 분명한 건 최소한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규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3월, 강추위에 후드티를 입었다고 운동장을 도는 학생이 더는 없도록 학생 학대 수준의 교사 멋대로 해석하는 규정은 없는지 점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