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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풀에서 아버지 냄새가 난다

등록일 2021-01-10 18:45 게재일 2021-01-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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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외 석

아침 산에 아버지가 있다

억새풀 볏짚 냄새에도 아버지가 있다


가을 들판에서


까시래기 날리며 타작하던 냄새가 아버지가 누워계신 산에서 난다


욕심 많은 아버지는 살아생전


그 냄새마저도


이 산에 데리고 왔다


내 등에서 아버지 냄새가 난다


아버지의 소소한 욕심 같은 것이


내 몸에서도 흐른다


내 몸엔 아버지가 있다


어느덧 나도 중년의 억새풀이 되어


쉰내 풍기던 아버지같이


한 개비 담배연기에 청춘이 간다


하산 길에 마주친 장 씨 영감


그 몸에서도 아버지 냄새가 난다


하회탈이 된 얼굴


잘 익은 웃음, 잘 익은 슬픔이 보인다


소나무 고목 밑둥치 같은


허물어져 가는 육신을 이끌고


혼자 쓸쓸히 경로당을 지킨다


말없이 엎드린 바위는


하고 싶은 말 다 뱉지 말고


아끼며 살라 한다


아버지는 내게 그렇게 말씀 하신다


억새풀밭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에게서 억새풀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닐까. 시인은 생에 대한 애틋함과 서러움 같은 것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 다 뱉지 말고 아끼며 살라’ 하신 말이 가슴팍에서 눈물로 흘러내려 가슴 먹먹한 아침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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