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태풍을 맞으며

등록일 2020-09-07 17:34 게재일 2020-09-08 18면
스크랩버튼
윤영대수필가
윤영대수필가

여름의 끝, 태풍의 계절이다. 7월까지 조용하던 태풍이 1년에 3개가 한반도를 넘어가는 2년 연속 3홈런의 태풍관측 사상 드문 대기록도 세우고 있다.

이들 삼형제-바비, 마이삭, 하이선은 적도 부근 태평양에서 열대성 저기압으로 태어나 ‘아기 태풍’이 되었다가 점차 열기를 끌어들여 힘을 키우고 급기야는 서북쪽으로 밀고 올라오는 강력한 폭군 회오리바람이 된 것이다.

셋째 하이선은 고수온 지역에서 오래 머무른 탓에 초속 50미터가 넘는 초강력 태풍이 되었고,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기운과 남쪽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충돌하여 집중호우로 엄청난 강수량을 보일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태풍 경로예측이 나라마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하이선은 우리나라를 관통할 거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대륙 쪽에서 발달하는 차가운 공기가 매일 조금씩 동쪽으로 밀어붙여 대한해협을 빠져 동해를 북상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포항 앞바다를 가까이 지나 지난번 마이삭으로 피해를 입은 해안지역의 피해가 컸다고 한다.

둘째 태풍 마이삭이 오던 날 엄청나다는 바람의 세기를 느껴볼 생각으로 새벽까지 눈을 뜨고 아파트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한밤중 유리창을 마구 두드리고 정원의 나무들을 흔들어 대더니 갑자기 정전까지 시켜버렸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푸르른데 앞 정원의 나무는 뽑혀있고 베란다에는 물이 흥건하다. 문틀 아래로 솟구쳐 들어온 빗물에 나무마루가 젖고 있었다. 여태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라 서둘러 물을 퍼내고 닦으며 손 한번 안 대었던 난간과 밖 유리창도 이참에 깨끗이 씻었다. 태풍 덕분(?)에 앞뒤 베란다 청소도 깨끗이 했다.

중국 대륙과 일본 섬 사이의 한반도는 태풍의 경로가 되기 쉽다. 태평양의 뜨거운 공기가 밀어 올리면 서해로 빠지면서 전라 충청의 논과 강을 넘치게 하고 대륙의 찬바람이 강해지면 동해로 밀려 경상 강원의 산과 바다를 뒤집으며 북쪽으로 올라간다. 세력이 비슷하면 한반도 중앙부를 관통하겠지. 우리 한반도는 어쩔 수 없이 이들 거대한 기류의 소용돌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지금 또 다른 태풍이 불어오고 있음을 느낀다. 코로나19의 먹구름 아래 정치권에서의 기압골이 마주치고 그사이에 민의(民意)의 강풍이 일어나고 있다. 서북쪽 기운의 사회주의 바람과 남동쪽 기운의 민주주의 바람이 큰 기압골을 형성하여 잔뜩 구름이 끼어있는 상태다. 희한하게도 태풍과 닮았다. 이 기압골이 세어지면 언젠가는 태풍으로 변할지도 모르겠지만 조용하게 안정되어 맑은 비나 뿌려 대지를 풍요롭게 적시고 밝은 하늘을 열어주었으면 한다.

태풍은 나쁜 짓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양의 물기를 뭉쳐와서 마른 땅의 가뭄을 해소시키고, 대기순환으로 먼지와 스모그를 씻어주기도 한다. 또 붉은 태양의 열기로 강과 바다의 색깔이 변하는 녹조와 적조 현상을 없애 수질 개선도 해주고 범지구적 에너지 순환을 돕기도 하는 등 우리 지구의 생태계를 안정되게 변화시켜주는 혜택을 주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도 심각한 피해를 주는 사나운 태풍이 아니라 한 번쯤 시원하게 불어와서 깨끗하고 안정된 나라로 변화시켜주는 태풍은 없을까?

아침산책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