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내서 고백할게요. 저는 사람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편입니다. 물론 요즘처럼 마스크로 무장하고 다녀서 그런 건 아니에요. 코로나 전염병이 돌기 전 부터 그랬으니까요. 특히 첫 만남이거나 한 번에 여러 사람과 악수로 인사 한 다음에는 어김없습니다. 어디에선가 불쑥 나타나 반갑게 눈길을 건네는 분들을 제가 몰라보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는 곧장 되묻습니다. 우리 언제 만난 적이 있던가요. 저를 아시나요. 어떤 분들은 까르르 웃습니다.
게다가 취약하게도 저는 얼마 전까지만해도 사람뿐 아니라 곤충도 잘 알아채지 못하는 어른이었습니다. 시각적 센스가 둔해서 일까요. 부끄럽지만(특별히 초등학생 조카에게) 서울 도심에서 자란 저에게 여치, 메뚜기, 사마귀는 모두 엇비슷한 녹색 곤충으로 보였습니다. 그 특별한 사마귀가 우리 집 밥상 위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 유명한 사마귀도 몰라보나요? 사마귀는 누가봐도 사마귀인데 어린이가 항의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제가 그랬습니다.
아침 메뉴로 어울리지 않지만 아무튼 그때, 저는 상추를 꼼꼼히 세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풀빛 무언가가 제 오른팔을 폴짝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사마귀 말입니다. 저는 그 곤충을 비닐봉지 안으로 생포하는데 성공한 겁니다. 숨구멍을 만들어 주고 푸른 잎사귀도 넣어주었습니다. 저는 사마귀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긴장감. 혹시 네가 나에게 유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에 오싹했습니다. 사마귀는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요. 퇴근하고 돌아오니 사마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기한 노릇이지요. 한낱 곤충이 탈출하다니 말입니다. 숨구멍을 큼직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자책해 보아도 소용없었습니다. 저는 사마귀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처럼 사마귀를 몰라볼 정도로 주변에, 이웃에게 무관심한 어른이 또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코로나 공포 시대에 제가 만난 그 특별한 사마귀에 대해서 소곤소곤 말해줄게요. 그 사마귀는요, 짝짓기를 마친 그 암컷 사마귀는요, 제 짝꿍을 대놓고 잡아먹는 못된 육식 곤충이었데요. 그리고 지금은 그 악명높은 사마귀가 짝짓기 하는 계절이래요. 어떠신가요. 과연, 사마귀 이야기가 호랑이 아저씨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코로나 전염병보다 더 무섭죠? /김정희(포항 남구 효성로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