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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등록일 2020-06-24 20:02 게재일 2020-06-2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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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살로메 소설가

공자와 자공의 수많은 대화 중 ‘좋은 사람’에 관한 부분은 제법 회자 됩니다.

자공이 묻습니다.

“마을 사람이 다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합니다.

“좋은 사람이 아니다.”

“마을 사람이 다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합니다.

“좋은 사람이 아니다. 마을의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마을의 선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좋은 스승답게 공자님 화법은 에둘러 갑니다. 곧장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두어 번 호흡을 가다듬을 여지를 줍니다. 우선, 공자님이 말씀하신 좋은 사람 아닌 것에 대해 짚어봅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야합에 물들었을 수 있고, 모든 이가 싫어하는 대상이라면 실없이 굴어 신뢰를 잃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 아닌 것이 맞습니다.

좋은 사람 아닌 것을 예시로 들면서, 공자가 정의한 좋은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의롭지 못한 이들이 미워하는 사람이지요. 그런 사람이라면 부조리 앞에서 단호하게 비타협을 실천할 것이며, 어려운 문제 앞에서 사심 없이 공정함을 논할 것입니다. 공자의 ‘좋은 사람’이란 한마디로 참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내는 이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착한 사람은 좋아할 것이지만, 나쁜 사람은 미워할 것이 자명합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나쁘게 말할 리 없고, 나쁜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을 좋게 말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못된 사람으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부정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공자가 정의내린 좋은 사람이 되거나, 그런 대상을 만나기란 쉬운 게 아닙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시시각각 타협을 종용 받고, 공정함 따위는 버리라고 재촉 당합니다. 공자가 말한 ‘좋은 사람’을 꿈꾸기는커녕, 비겁함을 무기삼아 조금씩 나쁘게 살아가는 편리를 택합니다. 좋은 사람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은 철학적 이상으로 새길 수는 있으되, 현실에서 접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애초에 좋은 사람, 운운하면서 규정을 지으려고 한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완벽한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 그러한 판단은 하지 않을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좋은 물건은 그냥 좋은 것이고, 좋은 사람은 마냥 좋은 것일 뿐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챙기고 싶은 마음은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심리적인 호응 관계에 기반한 지극히 감정적인 반응 체계니까요. 분명히 좋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정확하게 말할 수 없어야 그 대상을 좋은 사람의 범주에 넣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좋은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마음에서 자주 불러내는 일입니다. 좋은 사람은 정의 내리는 대상이 아니라 곁에 있음을 자각하는 거울 같은 존재니까요.

많은 곁사람들이 떠오릅니다. 감히 따라갈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정서적 감성과 예술적 감각을 지닌 다정한 사람들. 그들이 전하는 따뜻함과 성실함을 접하면서 세상엔 좋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하고 반성합니다. 오늘만 해도 그렇습니다. 음나무 장아찌가 잘 익었다고 누군가가 집 앞까지 배달해주고 갑니다. 새 집에 어울릴 거라며 오르골과 스노우볼을 놓고 가는 이도 있습니다. 며칠 앓았다는 것을 안 누군가는 죽 쿠폰을 전송해 옵니다. 천사 이름표를 단 것도 모자라 긍정의 에너지로 세상을 가꾸는 이들입니다. 처방전 없이도 받을 수 있는 명약이자, 예약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명의 같은 존재들. 울컥해집니다. 제 진심을 다 표현하기엔 오글거리고 그 마음을 다 갚기엔 아득하기만 합니다. 제대로 된 보답조차 없이 다만 오래토록 좋아할 뿐입니다. 은근히 까다롭고 대놓고 급한 제 곁에 훈풍 같은 여운이라니요.

김살로메소설가
김살로메소설가

좋은 것과 싫은 것에는 실체적 결론이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호불호가 있을 따름이지요. 점점이 떠있는 저 부표처럼 사람들은 닮은 듯 다른 듯 제 하루를 표류합니다. 그 단독자의 삶이 서로 엮여있음을 느끼는 때가 바로 여운을 맛볼 때입니다. 이런 날이면 공자님의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를 제 식으로 바꿔봅니다. 꿈속에서 공자의 제자가 된 누군가가 묻습니다.

“마을 사람이 여운을 남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합니다.

“좋은 사람이다. 마을의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마을의 선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본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아뿔싸!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가 없는 줄 알았는데, 공자님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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