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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가 있는 골목

등록일 2019-10-16 19:57 게재일 2019-10-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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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귀희

한적한 골목어귀 

피아노 한 대 웅크리고 있다

누가 놓아두고 갔을까

그 옆 민들레꽃 서너 송이

악보처럼 피어있는

피아노는 날마다

낡은 골목을 연주한다

모서리가 해져 펄럭거리는

(….)

언젠가 ‘카이’*가 나타나

감미로운 선율을 연주해 줄지도

다음날, 그다음 날

동판, 철선, 헤머가 사라진 뒤에도

그 옛날 왁자했던 골목을

떠올리기라도 하는지

빈 집의 처마처럼

갸릉갸릉 소릴내며

골목을 연주하고 있다

* ‘피아노의 숲’이란 에니메이션의 주인공. 숲속에 있는 고장 난 피아노를 ‘카이’가 치면 특별한 소리를 낸다.

한적한 골목에 버려진 피아노 한 대, 바람에 끝없이 아름다운 선율을 풀어내고 있는 피아노를 보며 평생 피아노 건반과 함께 살아온 시인은 피아노 밖으로 활짝 열리는 우주의 하모니를 듣고 있는 것이다. 비록 버려져서 녹슬고 비루한 모습으로 지워져 갈 운명이지만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풀어내는 버려진 피아노 같이 남은 생을 그리며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잡는 시인의 조용한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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