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일까?

등록일 2019-10-06 18:56 게재일 2019-10-07 16면
스크랩버튼
이미하 영어강사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막역하게 지내는 친구 부부들과 만남을 위해 경주로 가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벼 이삭이 바람에 흔들리며 물결을 이루는 모습, 한 잎 두 잎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나무를 보며 살짝 멜랑꼴리해지려는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SNS에 빛바랜 사진 넉 장이 올라와 있다. 경주에서 만나기로 한 J 언니가 보낸 그 사진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다. 남편이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잠시 차를 멈추고 추억 가득한 사진을 함께 보며 남편과 나는 바둑 수 되짚어가듯 과거를 복기했고 그 사진이 16년 전 보성 녹차 밭에서 찍은 것임을 마침내 기억해냈다. 경주에서 만날 네 부부를 포함, 친하게 지내던 아홉 가정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갔던 그때의 추억이 어제처럼 새록새록 떠올랐다. 초록빛 녹차 밭 한가운데 아이들이 늘어서고 그 뒤로 호위하듯 늘어선 부모들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 속에는 이틀 전 학업을 위해 새벽에 서울로 떠난 둘째 녀석도 있고 얼마 전 경찰 시험에 떨어진 후 새로 마음을 다잡고 대구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한 첫째 녀석도 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낡은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7살, 4살 앳된 두 녀석 얼굴이 낯설었다.

다른 사진에는 경주에서 만나기로 여인 넷이 턱에 꽃받침을 만들어 괸 채 녹차 밭의 싱그러움을 닮은 소녀 같은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젊은 모습들이 낯설고 생경하기가 아이들 사진을 볼 때보다 더했다. 마치 낯선 사람처럼 보이는 ‘그때의 나’를 한참 들여다보며 잠시 상념 속에 빠져들었다. ‘그때의 나’는 과연 ‘지금의 나’와 동일한 나일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라는 속담이 있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의 나’는 내가 살아온 과거 역사의 결과물이다. 16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문득 바라본 중년의 ‘지금의 나’와 두 개구쟁이 꼬맹이의 엄마이던 ‘그때의 나’는 참 많이 달라 보였다. 외모야 말할 것도 없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모습도 판이하다.

사내아이 둘을 키우느라 바빴던 ‘그때의 나’는 책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살았다. 삶에 치여 아등바등 살아가느라, 글을 쓰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삶의 부분이자 존재 양식인 독서와 글쓰기에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어떤 연계성도 없다고 느꼈다. 이렇게 다른 두 존재를 두고 어떻게 ‘그때의 나’가 ‘지금의 나’와 같은 나라 말할 수 있을까?

‘그때의 나’를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금의 나’와 비슷한 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16년 전 어느 날, 두 아이는 모두 잠들어 있고 ‘그때의 나’는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한밤중에 컴퓨터를 켜고 앉아 결혼한 여자의 이중고, 삼중고에 대해 적어 내려갔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음 날 중앙 일간지 H 신문사에 우편으로 원고를 보냈다. 며칠 후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고 내 글이 신문에 실렸다. 그러므로 지금 쓰고 있는 이 독자 수상은 내 두 번째 신문에 원고인 것이다. 이것으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다르지 않은 동일한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일까?

‘그때의 나’와 분명히 다른 ‘지금의 나’ 모습도 있다. 연약한 인간인지라 인생을 살며 몇 번 뼈아픈 실수를 했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후 여러 선택의 순간, 이 교훈을 기억했고 용기를 내어 도전했을 때 삶은 멋진 보상들을 선물해 주었다. ‘그때의 나’에 머물러 있지 않고 더 행복한 ‘지금의 나’가 되게 해준 힘이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앞으로의 내 모습’또한 ‘지금의 나’의 연속인 동시에 새로운 선택과 도전을 삶에 고스란히 반영하며 만들어나갈 것이다. 10년 후 얼마나 낯설고 생경한 시선으로 ‘지금의 나’를 바라볼지 모르지만 한 가지 모습만은 변하지 않은 채 남아있길 바란다. 10년 후에도 책 읽는 나,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그때의 나’로 남아있기를.

독자수상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