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마음 바쁘다. 오늘은 학술대회가 열리는 날. 하루하루 일수 찍듯 살지만 오늘은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 먼저 도서관에 가서 오후에 잠깐 인터뷰할 소설부터 찾아읽고. 하근찬의 ‘삼각의 집’과 정한아의 ‘할로윈’. 정한아 작가는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복사하고 읽고 하는 사이에 시간은 금방 흘렀다. 아홉시 사십분. 손님맞이에는 늦었다고 봐야 한다.
서둘러 행사장으로 가니, 원탁회의식 구상과 달리 책상들이 전부 앞을 향했다. 독일, 중국, 한국, 일본 국기도 어디 갔는지 없다. 파스쿠치에서 커피는 가져온 상태. 팔 걷어부치고 서둘러 행사장 모양 바꾸고 국기도 찾아 앞에 붙이고 한다.
운이 좋다. 낙성대에서 올라오는 버스들이 무슨 일인가로 잔뜩 밀려 있다는 문자들. 시작 시간을 조금 늦출 수 있는 명분 제공.
올해 초부터 준비한 학술대회. 지금부터 백 년 전은 기미년 삼일운동이 일어나던 해다. 많은 젊은이들이 상하이로 떠났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에 연유가 나타난다. 삼일운동 두 달 시위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은 사냥개에 쫓기는 토끼들처럼 숨을 곳 찾았다. 일제는 맨주먹의 청년들, 백성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살상했다.
압록강은 이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건너가야 했던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 이때 이 강을 건너 상하이로 간 젊은이들이 있었다. 이미륵, 서영해, 강용흘 등등.
그들은 상해에 모였다. 둘은 인도양 건너 유럽으로, 하나는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 갔다. 독일, 프랑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독립운동과 관련을 맺었다. 그들에게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안창호가 엿보인다.
그리고 이광수와 주요한. 상하이까지 갔다, 가서 독립운동에 관계하다 조선으로 되돌아온. 총독부 체제의 강제적 포섭력이 그들을 기다렸다.
중국 중앙민족대학의 이광수 연구자 김명숙 교수, 독일에서 이미륵의 산문들까지 본 박수영 작가, ‘압록강은 흐른다’를 일본어로 번역한 히라이 토시하루 교수, 이미륵을 독일 교양 소설 장르의 맥락에서 고찰한 최윤영 교수.
주요한의 상하이 이전과 이후를 논의한 박현수 시인, 그리고 이극로라는 괴물을 상대하느라 몇 달 더 나이 먹어버린 김동식 평론가.
살다 보면 운 좋은 때도 있다. 의도는 미미하였건만 그네들은 상상 이상이었다.
1919년 3·1운동의 해는 사회역사적 운동만의 해가 아니었다. 현대문학 역시 격동을 맞았다. 다른 세계를 보고 다른 꿈을 꾸었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