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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맨발로 연주하는 이유

등록일 2019-05-06 19:41 게재일 2019-05-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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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던 스코틀랜드 소녀가 있습니다. 볼거리 후유증이 나타나 여덟 살때부터 조금씩 청력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열 두 살이 되자 완벽한 귀머거리가 되지요. 피아노 연주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이 소녀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친구가 오케스트라에서 나무로 만든 타악기 마림바를 연주하는 모습에 푹 빠져 초등학교 음악부에 들어갑니다. “선생님이 팀파니를 치는 동안 저는 연습실 벽에 손을 대고 음의 높낮이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어떤 음은 손가락을 약간 울리는데, 어떤 음은 온 몸 전체로 퍼져 나가더라고요. 제 몸이 공명하는 방처럼 울린다는 것을 그때 확실히 느꼈습니다. 몸 전체가 거대한 귀로 변하기 시작한 순간이었죠.”

몸으로 듣는 방법을 익힌 소녀. 원하는 대로 소리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귀로만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낙담뿐이었어요. 보청기 같은 기구에 의존해 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소리가 왜곡되거나 고통스럽게 들릴 뿐이었죠. 보청기를 벗어 던지니 자유가 찾아온거에요.”

소녀 이름은 에벌린 글레니(Everlyn Glennie). 에벌린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맨발로 섭니다. 온몸으로 소리의 떨림을 느끼고 몸 자체로 음악과 교류하기 위해서지요. 그녀의 별명은 맨발의 연주자입니다. 포기를 모르는 열정의 소녀. 아침 7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연습에 매달립니다.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에 가서도 악보만 생각하지요. 삶 전체가 음악이요, 몸 전체가 귀입니다. 에벌린은 1982년 런던 왕립 음악원에 입학을 시도합니다. 당연히 거절당합니다. ‘런던 왕립 음악원은 청각 장애인에게 입학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거절 사유가 분명합니다. 그녀는 이 거절을 거부합니다. 학교 측에 자신을 청각 장애인이라는 잣대로 볼 것이 아니라 음악가로서 봐 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해 입학 심사를 받습니다. 교수들의 반대에 불구하고 세계적인 마림비스트 게이코 교수가 제자로 받아들입니다. 꿈을 묻는 기자들에게 눈을 반짝이며 말합니다. “듣는 것을 가르치는 센터를 세우고 싶습니다. 제대로 듣는 일은 절대로 대충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귀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역설이지요. 귀로 다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집중하지 못합니다. 다른 잡념이 들어오고 이해하려는 동기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말하기 위해 듣습니다. 눈부신 오월에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저와 그대 삶이기를.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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