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재발견 소설가 김별아의 경주 월성을 걷는 시간<br/>⑫ 풍류의 밤, 밤의 월성
최치원은 난랑비의 서문에서 말하기를,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이것을 풍류(風流)라고 한다. 가르침의 근원에 대해서는 선사라는 책에 잘 설명되어 있는데, 실로 이는 유교 불교 도교의 3교를 포함하고 있어 뭇 백성들을 감화시킨다. 집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서는 나라에 충성함은 노나라 공자의 가르침이다. 무위에 머물며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나라 노자의 뜻이다. 모든 악행을 멀리 하고 모든 선행을 받들어 행함은 천축국 석가의 교화이다”라고 하였다.
신라인의 ‘풍류’란 자연스러운 놀이가
음악과 시와 종교 등과 만나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이 되는 과정
화랑도 결속 다지는 매개역할 맡아와
신라의 달밤 걷기대회·신라달빛기행 등
유독 밤 배경으로 한 행사가 많은 경주
반달 닮은 터전에 지은 달의 궁궐 ‘월성’
어둑한 밤이 즐기기에 더 어울리는 듯해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풍류’는 화랑도의 사상이다. 최치원의 뜻과 별개로 유학자 김부식의 손끝에서는 ‘엄(숙)·근(엄)·진(지)’하게 풀이된다. 유불선을 포함하되 유불선으로 환원될 수 없는 풍류도는 신라의 고유한 세계관이자 문화다.
‘삼국사기’에 ‘풍류’라는 말은 한 번 더 등장한다. 김유신이 압량주 군주로 있을 때 백성들의 패기를 시험하기 위해 군사 일에 뜻이 없는 듯 술을 마시고 ‘풍류’를 즐기며 몇 달을 보냈다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풍류’는 별생각 없이 편하게 먹고 노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도 몇 차례 등장하는데, 제49대 헌강왕 때 성 안에 초가집이 하나도 없었으며 추녀가 맞붙고 담장이 이어져 있어서 노래와 ‘풍류’ 소리가 길에 가득 차 밤낮 그치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풍류’는 노래하며 놀 때 터져 나오는 진진한 소리이기도 하다. 사전적으로는 ‘멋스럽고 풍치가 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로 풀이되어 있다. 어쨌거나 노는 일, 그런데 난잡하게 막 노는 것이 아니라 멋있게 잘 노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존재라고 밝혔다. 놀이는 문화적 현상이며, 경쟁 혹은 재현이고, 의례와 축제와 종교와 관계한다. 인간 사회의 법과 제도 역시 놀이적 성격을 지닌다. 소송과 결혼제도, 전쟁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니까 하위징아의 주장은 한마디로 ‘모든 것이 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삶이 놀이 같아야 마땅하다고.
신라인들은 하위징아의 이론을 천년 전부터 실현했다. ‘풍류’의 연구자들은 자연스러운 놀이가 음악과 시와 종교 등과 만나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이 되는 과정을 밝혔다. 잘 놀다 보면 마침내 ‘하늘’과 만난다. 풍류객은 신과 하나 되어 누추하고 왜소한 자신을 뛰어넘는다. 경상도와 강원도 어디쯤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종종 발견되는 화랑도의 흔적은, ‘사다함이랑 무관랑이랑 모월모시 놀다 감. 우리 우정 영원히!’ 같은 놀이의 흔적이다. 풍류는 우정과 의리를 고양시켜 화랑도의 결속을 다지는 매개가 된다.
어울려 풍류를 즐길 수도 있지만 혼자 풍류에 젖어들 수도 있다. 아취(雅趣), 고아한 정취나 그런 취미에 빠지면 홀로 풍류랑이 될 수 있다. 혼자 놀아도 외롭지 않고, 함께 놀아도 누군가 소외되어 괴롭지 않은, ‘풍류’야말로 독거와 혼밥의 시대에 다시금 북돋워야 마땅한 흥취가 아닐까?
“아아, 신라의 밤이여!”
유호 작사에 박시춘이 작곡하고 현인이 노래한 ‘신라의 달밤’은 신라를 추억하는 대표곡이다. 달과 밤을 빼놓고는 신라와 서라벌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게다.
월성은 반달을 닮은 터전 위에 지은 달의 궁궐이다. 풍류를 이야기하며 즐기기에는 쨍한 낮보다 어둑한 밤이 어울리는 듯하다.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지, 경주에는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밤을 배경으로 한 행사가 많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빛의 궁궐, 월성’이라는 주제로 월성 발굴조사 현장을 야간에 개방하는 행사를 주최할 뿐더러, 매년 가을 사단법인 경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최하는 ‘신라의 달밤 165리 걷기대회’도 열린다. 165리면 약 66㎞, 황성공원에서 출발해 보문호수와 석굴암과 불국사를 거쳐 황성공원으로 돌아온다. 소요시간이 약 12~13시간이라니 밤을 꼬박 새워 경주를 돌아보는 흥미로운 행사다.
사단법인 신라문화원이 주최하는 ‘신라달빛기행’은 여름밤과 가을밤을 즐기기에 맞춤하다. 월성 일대를 돌아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코스가 있는가 하면 감은사지와 문무대왕릉을 포함하는 ‘감포·동해안권’, 선덕여왕릉과 보문사지 황금 들녘을 걷는 ‘가을들판을 거닐며’, 김유신묘와 무열왕릉 등을 돌아보는 ‘구절초와 함께하는 화통콘서트’ 등 다양한 코스가 있다. 참가비는 버스와 해설을 포함해 5천원인데, 투어를 마칠 무렵 서악서원에서 열리는 ‘고택음악회’와 서악동 삼층석탑에서 열리는 ‘구절초 음악회’가 눈길을 끈다. 밤과 음악, 그야말로 ‘풍류’의 향연이다.
달 뜨는 시간에 모여 남산 일대를 둘러보는 사단법인 경주남산연구소의 ‘경주남산달빛기행’도 있다. 겨울을 제외하고 한 달에 한 번씩 개최되는데 참가비는 무료다. 달빛에 비친 바위 부처님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홀리(holy)’해서 없던 신심마저 돋아날 듯하다.
민간 여행사에서 진행하는 ‘동궁과 월지 달빛 산책’이라는 야간투어도 있다. 어떤 코스로 진행되나 궁금해 숙소 카운터에 꽂혀있는 홍보지를 펼쳐보았다. 밤 7시 30분 첨성대에서 모여 출발해서 계림-월성-동궁과 월지까지 약 2시간 동안 도보 이동으로 이어진다. 문화해설사 비용과 동궁과 월지 입장료를 포함해 성인이 8천원, 소인이 7천원이란다.
사실 여행지에서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외국에서는 안전 문제 때문에 그렇거니와 밤을 즐기는 건 아무래도 젊음의 몫인 듯하다. 밤눈이 어두워지면서 행여 허방이라도 짚을까 밤나들이가 꺼려진다. 그래도 귀차니즘을 간신이 잠재우고 길을 나섰다. 이미 낮에 돌아본 곳들이지만 밤의 월성을 보고 싶다. 풍류가 넘실대는, 어둠의 비밀과 빛의 신비가 함께했던 그곳을.
쌀쌀하지만 청량한 밤이다. 월성은 순량한 초식동물처럼 어둠 속에 나부죽하다. 발굴조사 현장인 동시에 시민들의 산책로 역할을 하는 월성에는 LED등이 길을 따라 켜져 있어 천년 전의 횃불과 등롱을 대신하고 있다.
“아름다운 궁녀들 그리웁구나. 대궐 뒤에 숲속에서 사랑을 맺었던가? 님들의 치마소리 귓속에 들으면서, 노래를 불러본다 신라의 밤 노래를.”
‘신라의 달밤’ 2절과 3절 가사는 좀 야릇하다. 1절의 ‘고요한 달빛’ 사이로 울려 퍼지는 ‘불국사의 종소리’ 대신 아름다운 궁녀들과 버석거리는 치마소리를 읊조린다. 노래 가사 속의 ‘대궐’이라면 바로 월성이 아니런가? ‘신라의 달밤’이 노래하는 월성은 사랑의 공간이다.
도덕주의자들에게는 그저 음란하고 방종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신라의 원기왕성한 생명력을 이해하는 근거가 되는 ‘화랑세기’가 떠오른다. ‘풍류’를 이야기함에 있어 ‘풍류도’라는 이름을 지닌 화랑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풍류도의 우두머리인 풍월주의 계보이자 연대기가 ‘화랑세기’일지니, ‘화랑세기’는 풍류의 역사책이자 해설서인 셈이다.
그들의 삶과 놂은 매우 에로틱하다. 도덕과 제도를 훌쩍 뛰어넘으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진위 논쟁과 별개로 ‘화랑세기’를 통해 드러나는 신라인의 삶을 단순히 에로틱하다거나 난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색공지신(色供之臣:색을 바쳐 왕족을 보필하는 신하)과 삼서제(三壻制:여왕이 3명의 색공지신을 둠), 마복자(磨腹子)제도(신라의 독특한 대부(代父) 풍습으로, 임신한 여자가 상위계급의 남자와 동거한 후 낳은 아들이 마복자) 등은 삼국 가운데 후발주자인 신라가 왕통을 잇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그들의 방식으로 발버둥질한 흔적이다. 실제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왕실의 근친혼이 빈번했으며, 계급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계급상승의 사다리는 최소한이나마 보존해야 했다.
세상이 좋아져 조상들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할 후손들을 예상이라도 한 듯, ‘화랑세기’에는 신라의 캐치프레이즈가 빈번히 등장한다. 중국이나 다른 어느 세상에도 없는 그들만의 고유한 사상과 문화를 주장한다.
“신국(神國)에는 신국의 도(道)가 있다!”
월성을 빠져나와 길을 건너면 동궁과 월지다. 난데없이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나뉘어져버렸지만 원래 동궁은 월성의 연장이다. 애초에 동궁이라는 명칭이 월성에 정궁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월성과 동궁을 하나의 왕성으로 치면 면적은 약 21만㎡에 이른다. 증축한 경복궁의 면적이 약 34만㎡이니 고대의 왕성으로 대단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삼한통합 후 월성은 물론 서라벌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유입 인구와 우대할 귀족들이 늘어나자 서둘러 확장과 증축 공사에 들어간다. 문무왕 19년(679) 월성 동쪽에 큰 연못을 가진 동궁을 짓고 연못을 월지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는 월지라 불렀으나 조선시대 기러기와 오리가 많이 논다고 안압지라 바꿔 불렀다.
동궁과 월지는 1975년 정비 과정에서 우연찮게 유물 유적이 발견되면서 발굴조사로 전환해 큰 고고학적 성과를 거둔 장소다. 동궁과 월지가 이 정도일진데 과연 월성은? 이런 추측이 월성에 대한 기대를 더욱 크게 만든다. 단, 너무 큰 기대는 조바심과 성과주의를 부추길 수 있으니 조심조심해야겠지만.
지금은 동궁이 월성보다 인기 있는 관광지다. 일찍이 발굴조사를 끝내고 복원한 동궁과 월지는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 때마침 주말이라 표 사는 줄도 길고 화장실에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동궁과 월지의 조명보다 먼저 눈을 쏘는 빛은 아이들의 손에 들린 야광 풍선이랄까 불빛 풍선이랄까, 심해의 해파리 모양의 장난감 풍선이다. 왜 아이들은 저걸 갖고 싶은지, 어쩌다 부모들은 저걸 아이에게 사주는지 잘 모르겠다. 달빛으로 모자라 인공조명을 비추고, 인공조명으로도 모자라 야광 풍선을 들고 다닌다. 어둠이 사뭇 희귀해진 세상이다.
너희들 도시의 길은 너무 밝다! 너희는 별이 겁나느냐?
너희 음악 소리는 너무 크다! 너희는 바람의 속삭임이 두려우냐?
혹시, 너희는 너희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냐?
멕시코 아즈텍족의 후예인 크소코노쉬틀레틀은 어둠과 침묵을 몰아내고 우쭐해하는 우리에게 묻는다. 어쩌면 마음을 비추는 듯한 별빛이, 진실을 전하는 바람의 속삭임이 겁나는 게 아니냐고. 혹은 어둠과 침묵 속에서 더욱 명백해질 스스로의 비밀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냐고.
월성과 동궁 사이로 난 원화로를 걷는다. 별을 겁내지 않고, 바람의 속삭임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생을 즐기며 힘껏 놀았던 사람들의 길을 걷는다. 아, 신라의 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