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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국정 연설만큼 슬픈 입시 자화상

등록일 2018-11-07 21:19 게재일 2018-11-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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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새로움을 위해 아무리 아름다운 단풍도 미련없이 훌훌 털어내는 자연을 보면서 필자도 절망적인 생각들을 다 걷어내고 희망적인 이야기만 하려고 다짐했다. 그런데 11월 첫날, 그 다짐이 바로 무너져 버렸다. 필자의 희망을 날려버린 것은 바로 대통령 국정연설이다.

“‘포용국가’ 첫걸음, 국민 한 명도 차별없는 나라로”라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 필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클릭했다. 클릭하는 순간 필자의 희망은 재생 불능이 되어버렸다. 출처를 보니 1%대 시청률을 기록한 방송사였다. 신(新)용비어천가라도 부를 기세로 대통령 국정 연설에 대한 아유(阿諛) 기사를 토해내고 있었다. 이미 객관과 공정을 상실한 죽은 언론이지만 너무한다 싶었다.

그래도 내심 “국민 한 명도 차별 없는 나라”가 꼭 되길 속으로 간절히 기원했다. 하지만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음을 너무 잘 알기에 허탈함만 더 커졌다. 허탈함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고 대통령 국정 연설문 전문을 찾아 읽었는데, 정말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 이상적인 내용들이 목에 걸려 도저히 연속해서 읽어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읽기를 막아 세운 첫 번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동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교사의 처우개선으로 더 좋은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대통령이 생각하는 좋은 교육이 무엇인지 대통령께 묻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전 지인과 나눈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 지인은 고3 자녀를 둔 학부모였다. 지인의 아이는 학교에서 소위 전교 랭킹에 드는 실력을 가진 아이였다. 필자는 그 아이의 진학이 매우 궁금했다. 그런데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필자는 우리 교육의 암울함만 다시 확인했다.

“학교에서는 서울에 있는 S대를 가라고 하는데 애가 싫답니다. 그냥 취업하기 편하고, 그나마 취업에 덜 스트레스 받고, 또 안정적인 직업인 초등학교 교사가 되겠답니다. 그래서 교대 쓰기로 했습니다.” “아니 학교에서 선두권인 아이인데 그래도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 뭔가 좀 더 생산적이고, 도전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지원해야 되지 않나요. 만약 처음부터 교편에 뜻을 뒀다면 모르겠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 교대에 간다는 건 아이에게도, 또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너무 아깝지 않나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아이에게 말해 보세요.”

이 말에 지인은 한숨부터 쉬었다. 그리고 필자를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이 선생 말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도 괜히 어렵게 사는 것보다 선생이나 하면서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S대 간 아이들도 많은 수가 휴학하거나, 자퇴하고 교대 간다고 하잖아요. 사실 우리 애보다 성적이 좋은 선배도 이번에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자퇴하고 교대에 갔어요.” 필자는 “선생이나 하면서”라는 지인의 말을 오래 곱씹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깬 건 지인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대학교 갈 때는 최소한 이러지는 않았는데 안타깝습니다. 이 선생 혹시 기억납니까? 우리 중학교 후배 중에서 전국 1등, 2등 하던 후배 말입니다. 그 후배는 그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서울에 있는 물리학과를 갔지요. 정말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이 말을 아이에게 했다가 괜한 원망만 들었습니다.”

교육 현장의 사정이 이런데,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혁신적 창업은 혁신 성장의 기본입니다. (중략) 청년 창업의 꿈을 키우겠습니다.” 과연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청년들은 창업의 꿈을 꿀 수 있을까. 청소년 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창업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청소년들인데, 청년이 되었다고 바로 창업할 수 있을까? 더 암울한 것은 중·고등학교에서 창업 교육을 해야 할 교사들 중 상당수가 지인의 아이처럼 그렇게 교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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