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인
나는, 솟아나고 가라앉으며 60억 광년 회로를 따라
약속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
억만 년 전에 찢긴 흰 구름
푸른 물결로 출렁이면서
이 모래밭에 뿌리 내리려던 한 알갱이 모래
모든 일몰은 죽음으로 간다, 다시 내장되거나
캄캄하게 태어나는 빛
헤어지지 말아요
해의 누이 달이 속삭이는 소리
약속을, 동쪽 끝에 걸어두었는데 어느새
혈육으로 깁지 못하는 저녁이 왔다
이 구멍은 테두리뿐인 가락지처럼 속이 환하다
흔히 쌍가락지는 굳은 언약, 약속의 의미를 가지는 증표로 알려져 있다. 이 시에서의 쌍가락지는 해와 달의 운행이라는 우주적 약속을 비유하고 있다. 우주적 순환질서 속에서 서쪽까지 걸어가는 해와 캄캄한 시간을 뚫고 태어나는 달의 약속은 소멸과 죽음을 건너 생명과 빛으로 나아가려는 약속으로 읽혀진다. 시인의 비유가 심오하기 이를 데 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