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선거가 시작돼 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한 벽보와 펼침막을 보며 유권자의 고민이 시작됐다. 5월 31일부터 6월 12일까지 짧은 공식선거운동기간에 후보자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서 자신을 알려야 한다. 바쁜 일상 가운데도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면면과 공약을 살피며 누가 더 나은지 결정해야 한다. 과연 어느 후보가 민의를 잘 대변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사람일지, 유권자로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 대선 이후 처음으로 하는 선거라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부각되고 있지만, 지방선거가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장처럼 활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야당 대표의 말처럼 “남북관계 하나로 모든 것을 덮으려는 것이 이번 지방선거”라는 정치 프레임은 선거과정에 생산적인 논의보다 프로파간다만 난무하게 만든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교육감을 뽑는 6·13 선거는 공허한 권력 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의 시선으로 내려와야 한다. 지난 4년 얼마나 우리의 삶이 나아졌는지 엄정하게 평가하고, 동시에 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이 실질적으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 살펴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과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 기회이기에 주권자로서 한 표의 가치를 삶의 정치에 둬야 한다.
SBS ‘최후의 권력’ 제작팀이 쓴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보면 산마리노공화국의 인상적인 사례가 나온다. 이탈리아에 둘러싸여 있는 아주 작은 국가인 산마리노에서 정치는 봉사활동이다. 의원들은 정치인으로서 어떠한 특권도 기대하지 않는다. 의회장 근처 주차권도 주민들이 우선이니 자신은 필요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세탁소를 운영하거나 농부로서 생업에 종사하며 언제 어디서나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수렴해 정치에 반영한다. 선거철에만 볼 수 있고 표를 얻기 위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산마리노 의원들처럼 언제든 가까이에서 주민들을 위해 진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 선거가 끝난 후에 권력자가 돼 군림하거나 당리당략에 휘둘리며 무능력하게 허송세월을 보낼 사람을 뽑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무관심과 의무로 하는 투표행위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국민청원이 20만 건이 넘는다고 한다. 해당 코너는 직접 대통령께 정책을 제안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전달하는 장이자 또한 국민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위만 바라보고 대통령이 일거에 해결해 주는 정치가 아니라 보다 필요한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주변부터 바꿔가는 참여와 실천의 태도다.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에서 “천국이란 실상 그 설계나 내용이 얼마나 행복스러워 보이느냐보다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택 여부와 내일의 변화에 대한 희망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느냐”의 여부라고 했다. 결국 위에서 기획된 근사한 청사진보다 주권자로서 함께 만들어가는 정치과정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시민이 주인되는 민주주의 사회는 유권자의 손에 달려 있다. ‘촛불’과 ‘태극기’로 시민사회가 양분되고 여론을 조작하는 인터넷 정치가 가능하며 여전히 비방과 모함으로 선거가 진행되는 상황이기에 유권자의 통찰력이 더욱 요청된다. 대화와 토론, 질문하고 경청하는 소통과정을 통해 공동체 문제에 둔감하지 않은 현명한 시민이 정치적 주체가 돼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뽑아야 될지 고민한다면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그려볼 일이다. 선거는 지금의 문제만이 아니라 미래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회다. 산마리노의 의원처럼 주민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꾼을 뽑는 6·13 선거가 되길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어떤 후보를 ‘왜’ 선택하려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