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만 하
나무 그늘은 한 번이라도 물 안에 잠기고 싶다. 그늘에는 무게가 없다 무게가 없는 나무 그늘은 언제나 물 위에 떠 있다. 물 위에 거꾸로 서서 나무의 꿈은 밤 안개에 젖은 가로등 불빛처럼 가늘게 떨기만 한다. 도라지 꽃색 동해 불빛 위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햇살. 돌 위에 고인 해맑은 별빛. 아름다운 것은 가늘게 떤다. 땅 위에 눕기 직전의 가을 나뭇잎. 새가 날아오른 뒤의 빈자리. 보일락 말락 떨고 있다. 분명히 떨고 있다. 가시관을 쓰고 돌아온 자식의 싸늘한 몸무게를 무릎에 껴안고 흰 미사포 쓴 어머니의 두 어깨.
관심에서 벗어나 있거나 하찮은 자연물이거나 사물들도 그 나름의 아름다운 존재의 태(態)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가 닿은 섬세한 시인의 마음을 본다. 그 사소한 것이지만 그들은 아름다운 떨림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시인의 미학적이고 존재론적 인식에 깊이 동의하고 싶은 아침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