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 사람들이 거꾸로 가니 시대도 거꾸로 가고 있다. 지금 사회 돌아가는 정황을 보면 이름만 다를 뿐 왕정시대가 다시 열렸음이 확실하다. 역성혁명으로 왕이 바뀌면 왕정 초기에는 전대(前代) 왕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사활을 건다. 그 대표적인 방법이 숙청(肅淸)이다. 숙청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가지 뜻이 나온다. 하나는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음이고, 또 하나는 정책이나 조직의 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대파를 처단하거나 제거함이다. 그런데 숙청의 뜻은 전자보다 후자의 뜻으로 남북은 물론 전 세계에 사용되고 있다.
숙청은 충신을 하루아침에 역적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충신에서 역적으로 바뀌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와 기준이 없다. 그 기준은 간단하다. 그것은 `과거 사람인가, 아니면 현재 사람인가`이다. 과거 정부에서 힘 깨나 썼던 사람이라면, 또 그들이 정몽주 부류의 사람이 아니고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역적이 된다.
폐주(廢主)와 관련된 영화를 보면 꼭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이 원한(怨恨)을 꼭 갚아야 한다!” 한을 이식받은 사람은 절치부심(切齒腐心)한 끝에 자신이 섬기던 주군의 복수에 성공한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원한의 고리가 끊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恨)의 가장 큰 특성은 대물림 되면서 복수의 감정을 더 키운다는 것이다. 악의 순환 고리에 연결되어 있는 어느 한 쪽이 멸종되지 않는 이상 한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숙청 왕국의 또 하나 특징은 새롭게 권력을 잡은 자들이 새 주군(主君)의 마음을 얻기 위해 주군 따라 하기에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정치권력은 마약과 같아` 한 번 맛들인 사람들은 절대 헤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권력 욕망이 강한 자일수록 주군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지금 시대가 다시 왕정 시대로 퇴화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를 교육부에서 찾을 수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하고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고 쇼를 한 적이 있다. 혹시 `광화문 1번가`라고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국민인수위원회라는 그럴싸한 말에 속아 필자는 대안학교 학생들이 당하고 있는 불합리하고, 불평등적인 상황을 장문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광화문 1번가에 속은 것이 억울해 광화문이라는 말만 들어도 뒷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교육부에서 그 `광화문 1번가`와 비슷한 `온-교육`이라는 사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이런 홍보 글귀를 달아 놓았다. “`온-교육`이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국민과 활발히 소통하는 `국민의 교육부`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11월 3일까지 의견접수를 받아 교육부 장관이 직접 11월 15일에 영상 답변을 하겠다는 배너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또 속는 셈치고 글을 올렸다. 그런데 교육부 장관의 답이 어떨지는 안 봐도 뻔하다. 왜냐하면 `광화문 1번가`의 쇼를 필자는 너무도 잘 기억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온-교육`을 이용할지는 모르겠지만, 국민의 소리를 듣기보다는 `교육 분야 6대 국정과제`를 홍보하는 수단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6대 국정 과제 중 첫 번째 과제인 `유아-대학, 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눌러 보면 세 번째로 `고교 무상 교육 실현`이 나온다. 물론 고교 무상 교육도 실현되어야 한다. 그보다 앞서 의무교육 대상인 대안 중학교 학생들에 대한 지원부터 해야 하지 않을지. 사람들은 말한다. “이 선생이 아무리 떠들어 봐라. 그들이 눈 깜짝 하나. 그들의 관심은 내년 선거인데, 대안교육은 표가 적잖아. 괜한 수고하지 마라.” 왕정(王政) 대한민국, 그리고 교육, 참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