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이나 2월쯤에 전국의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 예비 신입생 면접을 한다. 해당 학교 선생님들이 예비 신입생들의 취학통지서를 수합하면서 반 편성 할 때 참고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던진다. 예전에는 수리력 측정을 위해 수 세어보기나 간단한 숫자 읽기, 언어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이름이나 주소, 가족 관계 등을 묻고, 낱말 카드나 간단한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어보게도 하였지만, 요즘에는 공교육정상화법과 관련해서 몇 가지 질문으로 제한한다. 물론, 이런 간단한 면접으로도 아이의 언어 능력이나 기본 생활 태도 등을 엿볼 수 있다.
몇 년 동안 1학년 예비 신입생 면접을 하면서 느낀 점은 아이들마다 그 수준차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특히, 언어 능력의 차이가 면접 태도를 포함한 기본적인 생활 습관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았다. 어떤 아이는 또렷한 발음으로 이름이나 주소, 가족 관계 등을 막힘없이 대답하지만, 또 다른 어떤 아이는 선생님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거나 주소, 가족 관계는커녕 자신의 이름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어디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최영은 교수는 어휘 인식 실험을 통해 평소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말이나 사용하는 단어의 종류가 아이의 어휘습득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언어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면서, 아이마다 언어능력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남다른 교육비법이나 특별한 자극에 있는 게 아니며, 아이가 속한 언어 환경, 즉 부모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하는가, 얼마나 다양한 어휘를 들려주는가에 달려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부모의 언어능력과 언어습관이 우리 아이의 살아 있는 언어 환경이다. 부모가 의도치 않아도 아이는 자연스럽게 부모가 어떤 단어들로 어떻게 말하는지 습득하고 언어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자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평소 대화를 자주 나누는 것도 자녀의 언어 능력을 향상하는 방법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책 읽어주기`다. 경희대학교 도정일 교수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어휘를 늘리기 위함`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부모가 자신은 잘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어휘`를 동원해 자녀와 대화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저마다의 `언어 한계`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를 규정한다`고 말했다. 그 누구도 자기 언어의 한계를 벗어난 `세상`을 이해하거나 상상할 수 없다. 자녀의 언어 한계를 넓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책 읽어주기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가 그만 읽어줘도 된다고 할 때까지 부모는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어야 한다. 그림책부터 시작하는 책 읽어주기는 우리 아이의 언어 능력과 상상력을 발달시키는 훌륭한 언어 환경이 된다. 부모와 자녀가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그림책 읽어주기를 통해 우리 아이의 언어 환경을 개선하고 나아가 언어 한계를 넓힐 수 있다.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우리 아이의 언어 환경은 개선할 수 있다. 휴일마다 도서관을 찾아다니고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면 된다. 부모가 책을 좋아하고 책 읽기를 즐기면 금상첨화다. 매년 신입생 면접 때마다 언어 환경이 다른 아이들을 만난다. 아이들에게 좋은 집, 좋은 환경은 평수가 큰 집, 이름난 새 아파트가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즐기고, 책 읽어주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집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차용해본다.`우리 아이가 처한 언어 환경이 우리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