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권, `초인가족` 이끌며 큰 웃음 선사… “거짓 연기할까봐 늘 걱정”
언뜻 농담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매우 진지했다. 슬렁슬렁 가볍게 툭 내뱉은 것 같지만 배우로서의 묵직한 고민을 진솔하게 토로한 것이었다.
이게 바로 배우 박혁권(46)의 스타일이다.
SBS TV 월요 드라마 `초인가족`을 지난 5개월간 끌고 온 그를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40부작으로 기획돼, 이제 8부 능선을 넘은 `초인가족`에서 박혁권은 극의 70% 이상을 책임지며 큰 웃음과 따뜻함을 선사했다.
◇ 박혁권이 창조한 또 하나의 캐릭터 `나천일`
`초인가족`의 주인공 `나천일`은 깡촌 출신, 주류회사의 만년 과장이다. 소심하면서 우유부단하고, 이기적이고 철도 없다. 눈치도 없고, 딸이 다니는 중학교 앞 `바바리맨`으로 몰리는 등 종종 어처구니없는 상황에도 처한다. 하지만 미워할 수 없다. 박혁권은 그러한 소시민 `나천일`을 지금 내 옆에 있는 누군가처럼 생생하게 그려냈다. `연민`과 `공감`이라는 열쇳말에 실어서.
“나천일 연기하는 게 되게 재미있었어요. 현실에 존재할 만한 인물이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우리가 사람을 보면 진짜 멋진 사람인지, 멋진 척하는 사람인지 알잖아요? 나천일은 멋진 척을 안 해서 좋아요. 또 `척`을 하려고 해도 매번 다 들키죠. 하지만 그런 나천일도 초인이죠. 드라마의 제목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모두가 초인이라고 생각해요. 그 초인들이 모여서 이번에 (촛불시위로) 큰일도 해냈잖아요?(웃음)”
`밀회` 강준형, `펀치` 조강재, `프로듀사` 김태호, `육룡이 나르샤` 길태미는 모두 박혁권의 섬세한 손길이 빚어낸 명 캐릭터다.
`초인가족`의 나천일은 이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인 최신작이자, 박혁권이 TV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맡은 주인공 캐릭터다. 덕분에 시청자는 너무 자연스러워 저절로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박혁권 표 연기를 풍성하게 맛볼 수 있었다.
“대본이 정말 좋았어요. 진영 작가님이 정말 다양하고 폭넓은 이야기를 다뤘고 진짜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펼쳐졌어요. 그러면서 사회적 이슈도 건드려줬고요. 엄효섭 선배님이랑도 얘기했는데, 작가님이 다음에 미니시리즈를 쓰면 잘 쓸 것 같아요.”
박혁권은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싱글이다. `초인가족`에서 알콩달콩 가정을 이루며 살아갔으니 결혼 생각이 더 나지 않았을까.
“안 그래도 주변에서 실제로 가정을 이뤄 아빠가 되고 싶지 않냐고 묻던데, 저는 결혼을 더 하고 싶지 않아졌어요.(웃음) 혼자 오래 살다 보니 공간적, 시간적인 면 등에서 결혼을 하면 답답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아직은 같이 놀아줄 친구들이 많아서 별로 외로움을 못 느껴요.”
◇ “연기의 미각 둔해질까 걱정”
박혁권은 평소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긴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버스도 혼자서 타보고, 동네에서 목공수업도 듣는다.
“저는 평소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잘 안 봐요. 대신 사람들을 만나죠. 어차피 연기는 가짜지만, 가짜를 보면서 가짜 흉내를 내느니 진짜를 보고 흉내를 내자 싶은거죠. 사람들을 만나 술 마시고 이야기를 하면서 `진짜`들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것을 좋아해요. 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면 직접 다 해보려고 하고요. 최대한 진짜를 보여주고 싶은 거죠.”
그런 확실한 가치관으로 인해 그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연기 같은 연기`가 나오면 관람을 멈춘다고 한다.
“저의 병적인 부분이죠. 하지만 제가 보면서 `세상에 저런 사람이 어딨어?`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 싶은 대목이 나오면 더는 못 보겠는 거에요. 특히 독백, 혼잣말을 길게 하는 거 못 보겠어요.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중얼중얼 혼잣말을 길게 할까요? 저는 혼잣말이 7음절을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10음절 이상이 되면 못하겠다고 하고요. 그래서 제 주변 사람들은 저랑 영화 보는 거 피곤해 해요.(웃음) 하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연기는 못 봐주겠어요.”
그런 그가 배우들의 연기에 반해 최근 3번 본 작품이 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 보셨어요? 저는 `얘네 미쳤구나` 하면서 3번 봤어요. 정말 연기가 너무 자연스럽더라고요. 저는 유머도 이창동 감독님 식의 유머가 좋아요.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너무 웃긴 거 있잖아요. 관성적인 거, 관습적인 거는 너무 싫어요. 이런 제가 대놓고 거짓말(연기)을 하게 될까 봐 늘 걱정입니다. 연기의 미각이 둔해지지 않을까 걱정돼요. 그러지 않기 위해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관찰하려고 하죠. 광화문 촛불시위에도 자주 나갔어요. 마스크를 쓰고 나갔더니 못 알아보시더라고요.(웃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