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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린 돈의 위력

등록일 2017-05-30 02:01 게재일 2017-05-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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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주<br /><br />한동대 교수
▲ 김학주 한동대 교수

시중에 풀린 돈을 `유동성`이라고 부른다. 최근 증시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이제 세계경제가 오랜 터널을 지나 본격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와 지속되지 못할 반등이라는 견해가 엇갈린다. 그러나 지금의 증시가 유동성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증시의 유동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첫째, 기업에서 보냈다. 세계경제가 저성장으로 접어들며 기업들의 제조설비에 대한 투자는 눈에 띄게 줄었다. 그 잉여자금으로 기업들은 금융자산을 사거나 자기회사 주식을 매입 소각한다. 그 결과 기업의 실적과 상관없이 주가가 올랐다.

둘째, 부의 불균형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면 소비를 하고 이는 기업의 설비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진다. 즉 경기가 선순환으로 접어든다. 그러나 부자들에게 돈이 몰린다. 그들의 소비성향에는 한계가 있는 바, 남는 돈으로 금융자산을 사게 된다. 특히 부자들은 노인들이므로 여생을 대비하기 위해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 금융자산이 더욱 필요하다.

셋째, 무엇보다도 중앙은행들의 금융자산 매입이 컸다. 빈곤한 사람들의 빚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그리고 부실기업의 부도를 막기 위해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낮춰야 했고, 이를 위해 시중 채권을 사야 했다. 채권가격이 오를수록, 즉 금리가 하락할수록 주식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각국 정부는 약한 자를 돕기 위해 금리를 내렸는데 이들을 볼모로 잡고 있는 부자들의 배를 채워준 결과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앞으로는 더 유동성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지배적이다. 그 기대를 만드는 장본인은 트럼프다. 그는 사업가답게 세계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유동성의 회전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금융기관들의 규제를 풀려고 한다. 리만 사태 이후 시스템 붕괴 위험이 재발하지 않도록 금융기관들의 방만한 투자를 제한해 왔는데 그것을 풀 계획이다. 이제 금융기관들이 다시 금융자산을 살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가격이 한 단계 더 오를 수 있다는 기대다.

또한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초기의 입장과 달리 달러강세 정책을 취하지 않고 있다. 즉 아시아 자금들을 미국으로 끌어와 투자하겠다는 것처럼 보였지만 미국인의 구매력 증가 여력에 한계를 실감했는지 거꾸로 돈을 아시아로 보낼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기고 있다. 특히 그는 청정에너지인 천연가스를 중국에 팔고 싶어하는데 중국의 위안화 강세를 용인할 경우 중국이 미국의 에너지를 사는데 좀 더 편한 상황이 만들어 진다. 유동성이 아시아로 환류한다면 이는 아시아 증시에 좋은 소식일 것이다.

시중에 풀린 돈이 금융자산을 따라다니며 가격 거품을 만드는 것 외에 산업의 합리화에 기여하는 부분도 있다. 값싼 자금조달이 가능해져 기업의 인수합병(M&A)이 쉬워지며 산업 내 경쟁을 줄일 수 있다. 산업 내 구조조정(consolidation)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의 이익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원인도 반도체 산업 내 구조조정이 끝난 상태에서 수요가 약간만 증가해도 제품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동성 잔치에는 분명히 비용이 따를 것이다. 저금리로 인해 기업과 가계가 빚을 두려워하지 않고 늘려 간다. 정부의 부채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늘었다. 그 부담은 다음 세대의 몫이다. 미국 중앙은행은 이를 완화하려 이제는 유동성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동안 중앙은행들이 말 뿐이었고 시장에 우호적인 정책만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만큼 낙관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다.

과연 트럼프가 돈을 아시아로 보낼까? 그리고 중앙은행들이 계속 유동성 잔치를 벌일까? 투자자들은 가격 거품에 이미 중독되었고,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늑대가 도적같이 오는 날 모두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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