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술이 발달하고 보급이 확산되며 평균수명이 늘어왔다. 그리고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기대는 이제 시작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 근거는 인간 유전자의 기능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또 증강현실 등 원격진료를 도와 줄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이 발달하면서 질병을 예측하기 더욱 쉬워질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수명이 2000년 76세에서 2015년 82.3세로 늘어났다. 물론 현대 의료과학의 힘도 컸겠지만 가장 의미 있는 설명력을 가진 요인은 흡연율의 하락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이제 거의 한계에 왔다. 영국의 경우 2015년 노인들의 평균 수명은 기대치를 처음으로 하회했다. 그저 일시적인 현상으로 생각했는데 2016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나자 수명 연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분위기다.
무엇이 인간의 수명 연장을 방해할까? 첫째, 고령으로 갈수록 단위 수명 연장에 소요되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즉 70세 노인과 80세 노인의 수명을 1년 연장시키는 것은 방법과 비용 면에서 판이하게 다르다. 마치 석유를 채굴하러 깊은 바다로 갈 때 1m 더 깊이 들어갈 때마다 지불하는 비용이 급증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둘째, 지금 고령화되고 있는 인구는 70년대 및 80년대 세계 경제의 고성장을 감당해 냈던 분들이다. 시간이 없어서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고, 야근을 밥 먹듯 하던 사람들이다. 그 만큼 몸이 상했을 것이다. 당뇨 및 순환계 질환 등 성인병 발병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그렇게 일했어도 성장의 희망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일중독(workaholic) 현상을 대부분 갖고 있다. 성장이 사라진 지금 그들은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까? 최근 선진국 마약시장의 증가는 이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그 동안 흡연율이 하락해 수명이 연장되었다면 이제는 저성장에서 오는 우울증의 부작용이 인간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셋째, 고령일수록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나이를 막론하고 사람은 생존하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죽지 않으려고 얼마든 돈을 쓸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효용이 떨어질수록 환자는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데 소홀해질 수 있다.
인간의 수명이 기대만큼 늘어나지 못할 때 경제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먼저 경기침체 기간이 단축될 수 있다. 노인이 죽으면 잔여 재산의 절반은 국가로, 나머지 절반은 소비성향이 높은 자녀에게로 상속된다. 즉 막혔던 자금이 돌기 시작하며 소비가 개선되고, 투자가 뒤따를 것이다. 그 결과 고용이 확대되고 다시 소비가 증가하는 선순환의 길로 접어든다. 특히 노인은 혼자서 늙는 것이 아니다. 노령화는 젊은이들의 노동력을 소모한다.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경제활동참여 인구가 더욱 감소하며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게 된다. 이런 부작용이 짧아질 수 있다면 경제회복에 도움이 된다.
보험사와 연금기관의 숨통이 트일 것이다. 그 동안 예상을 상회하는 수명 연장으로 인해 이들의 부담이 너무 커졌고, 유럽에서는 도산이 임박한 기관들도 언급됐었다. 종업원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기업들의 연금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났었다. 이제 이들이 인간 수명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 잡는다면 훨씬 안정될 것이다.
한편 노인들이 첨단 의료기술의 도움으로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해도 다시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즉 복용하는 약만 바뀔 수 있다. 따라서 신약개발 업체들의 호황은 이어질 것이다.
우리 노인들은 열심히 일했으며 자녀들의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었다. 최근 젊은이들이 그런 노력을 부인할 때 씁쓸하고, 일찍 죽는 것이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니 섭섭하다. 신께서 노인들의 수고를 위로할 것이며, 또 노인들이 가급적 장수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