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집이 멀어서 니리 온다꼬 지엽재?”
조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봅니다. 할아버지는 한 번 더 똑같이 말하지만, 서울에 사는 조카가 이 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합니다. 저는 “태호야, 너무 멀어서 내려오느라 지겨웠지?”라고 번역해줍니다. 조카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아니요”합니다. 평소에 3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 5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태호는 동생 소현이와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겠지만 정작 지겨운 것은 형과 형수였던 것 같습니다.
`지겹다`의 어원은 `직엽다`로 여겨집니다. 그랬던 이 단어는 두 가지 형태로 분화하였을 것인데, 먼저 `ㄱ`을 이어쓰기 하면서 `지겹다`가 되었고, 이것이 표준어로 정착한 듯합니다. 이와 달리 경상도 사투리는 (아니 정확히 제가 사는 지역의 말은) `ㄱ`이 탈락하여 `지엽다`가 되었을 것입니다. `몰개`였던 것이 `모래`가 되었듯, 혹은 `남그`가 `나무`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추측해볼 수 있지만 “지엽재?”라는 말에는 아직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문법적으로 보았을 때 이 말은 “지겨웠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동네 사투리로 바꾸면 `지여밨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ㅂ`이 `워`로 바뀌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지금 국어수업을 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왜냐하면 조카는 스스로 지겨워진 것이 아니라 차가 막혀 지겹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지겹다`라는 동사는 `지겨웠지`라는 사역형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현대어는 행위의 주체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그런데 과거로 갈수록 이런 구분은 불명확했습니다. 고어라 할 수 있는 한자나 라틴어는 아주 기본적인 문법만 가지고 있습니다. 이 언어들은 동사의 어형변화 없이도 변화합니다. `지겹지`가 `지겨웠지`로 이해되듯이 말입니다. 정보의 양이 많아지고, 정보가 다양하며 복잡하고 어려워질수록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점점 문법은 세밀하고 자세하고 복잡하게 갈라져 의미전달에 도움을 줍니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이런 복잡하고 자세한 문법은 크게 쓸모가 없습니다. “지겨웠지?”를 “지겹지?”라고 말해도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습니다. 현대인은 애써 이렇게 세분화된 문법을 사용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옛날 사람의 습관에 젖어 있어 옛날 말을 씁니다. 아버지는 옛날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조카가 그런 할아버지를 만났으니, 공간적으로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이동한 셈이 됩니다. 현대에 이르러 명절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탈 것의 발전으로 공간적 제약이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이 시대에 명절은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만들어 주는 다리가 아닐까요?
옛날의 명절은 일가친척이 모여 조상님에게 한 해가 왔음을 알리고, 복을 빌고, 음식을 나눠 먹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일이었습니다. 백석의 시는 이런 명절과 제사의 풍경을 `여우난곬족`과 `제사`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 고무, 고무의 딸 이녀,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 고무, 고무의 딸 승녀, 아들 승동이”(`여우난곬족` 부분)
친척들이 다 모이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이렇게 모인 친척들은 명절 준비를 하고 밤이 깊으면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 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를 하며 하룻밤을 보냅니다. 날이 밝으면 제사를 지낼 것입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대멀머리에 외얏맹건을 지르터 맨 늙은 제관의 손에 정갈히 몸을 씻고 교우 우에 모신 신주 앞에 환한 촛불 밑에 피나무 소담한 제상 위에 떡 보탕 식혜 산적 나물지짐 반봉 과일들을 공손하니 받들고 먼 후손들의 공경스러운 절과 잔을 굽어보고 또 애끊는 통곡과 축을 귀애하고 그리고 합문 뒤에는 흠향 오는 구신들과 호호히 접하는 것”(`목구`부분)
위의 시가 비록 제사를 모실 때 쓰는 `목기(木器)`에 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제사`로 바꾸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 것과 없는 것과 한줌 흙과 한 점 살과 먼 넷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룩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목구`부분)
`아득한 슬픔`은 `목구`만이 아니라 제사라는 행위 전체로 보아도 될 듯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왜 슬픔이 담기는 것일까요? 제사는 그지없는 정성과 공손함을 바치는 것이지만 `옛 조상`과 `먼 후손`들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아 서로에게 닿을 수 없습니다. 그 안타까움이 `슬픔`의 정체는 아닐까요?
지금의 명절은 이런 `슬픔`과 거리가 멉니다. 제사 음식도 간소화되었고, 심지어 명절을 쇠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명절의 전통적 의미는 사라지고 이제 빈껍데기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껍데기로부터 옛날의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은 아닐까요?
현대사회의 변화는 너무도 빨라 흔적도 없이 자꾸만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뿌리 없는 나무처럼 흔들리며, 현재가 전부인 양 살아갑니다. 명절은 그런 우리를 일깨워줍니다. 저에게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에겐 아버지의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 많은 호랑이 같은, 곰 같은, 소 같은, 피의 비 같은, 밤 같은, 달 같은”(`목구`부분) 그런 유구한 과거가 우리의 내면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하여 명절은 현재 속에서 옛날을 잇는 다리가 되어줍니다. 그것이 명절의 현대적 의미는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