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1월 1일, 감포 오징어잡이 배
새해 첫날에는 무엇들 하셨는지? 최근 몇 년 동안 새해랍시고 특별히 뭘 한 것이 없다. 바쁜 일상 속으로 새해가 불쑥 끼어드는 느낌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도 전날과 다르지 않았다. 새해 첫날 역시 전날과 다르지 않았고, 그 다음 날도 전날과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86년에서 87년으로 넘어갈 때 짠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나도 거기 맞춰 떡하니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걸 확신할 수도 있었다. 일기에 1987이라고 써야 할 것을 버릇처럼 1986이라고 쓰고, 지우개로 그 숫자를 지울 때면 1년을 통째로 지워버리는 느낌이 들어 다시는 틀리지 않아야지라고 다짐했다. 해가 바뀐 뒤 한동안은 그런 것들을 생각하느라 신경이 팽팽해졌다. 어느 사이 그런 긴장감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고 작년과 올해를 가르던 문턱이 이제 흔적도 없이 닳아버렸다. 애초에 그런 경계 같은 것은 없었겠지만 어쩐지 그런 것이 없다고 말하는 건 불손하게 느껴진다.
물론 새해 첫날을 특별히 보냈던 때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감포에 갔던 날이다.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취해 있었고, 들떠 있었고 친구들이 간다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내 차는 친구가 운전했고, 나는 또 다른 친구의 차에서, 시트도 없는 짐칸 같은 뒷좌석에 이불을 깔고 드러누워 수다를 떨었다. 같이 간 친구들이 열 명도 더 되었던 것 같다. 다음 해도 그 다음 해도, 이 친구들과 새해를 함께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바람 같은 것이 이뤄질 수 있을 만큼 삶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감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새해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불꽃놀이를 했다. 총처럼 튀어나오는 연발 불꽃을 샀다. 불꽃은 하늘로 올라 바다에 떨어졌다. 한 친구가 불꽃이 나오지 않는다고 들여다보다가 눈을 다칠 뻔하기도 했다. 화들짝 놀란 친구는 엉덩방아를 찧었고, 하마터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웃고 또 웃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그런 시간을 따라 환하게 불 밝힌 오징어잡이 어선 떼가 몰려들었다. 그날은 날씨가 춥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제대로 해를 보기는 어렵겠다고들 했다. 어차피 나는 잠과 술 따위에 잠겨 있었고 그보다는 우정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들에 흠뻑 취해 있었으므로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흐린 날씨만큼이나 정신도 흐릿했으나 다만 뚜렷이 남아 있는 건 어화(漁火)였다. 검은 바다를 향해 달려간 어선들은 수평선 끝에서 학익진이라도 펼칠 것처럼 일(一)자로 늘어섰다. 새해에도 일을 해야 하는 어부들이 있다는 것, 우리가 이렇게 지켜보고 있는데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불빛은, 새해 첫날이라고 불리는 것이 또 다른 어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했다. 어화는 다가올 미래였다.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새해를 즐길 만큼 앞으로의 삶이 녹녹치 않으리라는 것, 세월에 닳고 닳아 새해를 새해로 느낄 수 있는 감각 역시 무뎌질 것이라는 그런 예감 말이다.
□2017년 1월 1일, 和光同塵(화광동진)
그렇게 2017년에 이르렀다. 이 2017이라는 숫자가 무척 낯설다. 나에겐 삶의 기준이 되는 연도가 있는데, 그건 대학에 들어갔던 1997년이다. 사람들이 과거 일을 이야기할 때 그 일이 1997년 이전에 일어났으면 엄청 오래된 일처럼 느껴지지만, 1997년 이후의 일이라면 `에게, 얼마 되지도 않았네` 라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벌써 십년 이상 지난 일인데 그게 어떻게 얼마 되지 않았냐고 핀잔을 준다. 그러면 그제야 머리를 긁적이며 쌓여온 시간을 실감하게 된다. 작년에 내 강의를 수강한 학생 중에는 1997년에 태어난 학생도 있었는데, 그런 학생은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혹시 여러분도 그런 `심상지리적 차원`의 연도를 가지고 계신지? 1997년에다가 나를 묶어놓은 이유는 대학 입학만큼 나를 설레게 한 일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그 때나 지금이나 삶에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학을 졸업한 것도, 대학원에 들어간 것도, 일을 하게 된 것도 큰 변화였는데도 여전히 1997년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나보다.
그런데 조심스럽게 2017년이 새로운 기준점이 되진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어쩌면 외국에 나가게 될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지금껏 공부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될지도 모르고,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렇게 말하니 뭔가 희망차 보이지만 사실은 암울하다. 외국에 간다면 듣도 보도 못한 구석진 나라로 가게 될 것이고, 새로 공부를 하고 싶은 이유는 이걸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며, 이직을 하는 이유는 지금 다니는 직장이 내년을 넘기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명상을 한다. 가부좌를 틀려면 왼쪽 발을 먼저 얹는지 오른쪽 발을 먼저 얹는지, 또 숨은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손은 어디에 어떻게 두는지조차 모르지만 최대한 정갈한 마음으로 최대한 정갈하게 앉아 본다. 다리가 굵어 가부좌를 틀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일단 앉는다. 그냥 한 30분 정도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앉아 있을 생각이다.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비울 목적이라지만, 나는 오히려 생각을 이어나갈 심산이다.
복잡한 문제들을 생각한다고 해봤자 몇 분 가지도 않는다. 생각할 일들은 이어지지 않고 짧은 생각들이 지나치기만 한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그런 바람을 느낄 틈도 없이 자동차가 바람을 가로 지른다. 내가 명상하는 동안 가만있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열무의 움직임을 귀로 쫓는다. 열무는 몇 번씩 재채기를 하고 코를 킁킁대며 내 주변을 걸어 다닌다. 열무의 걸음은 긴 발톱이 먼저 닿고, 발바닥의 젤리 같은 물컹물컹한 패드가 닿는 식이다. 열무는 그야말로 사뿐사뿐 걷는다.
명상에 잠긴 동안 절망도 희망도 빛 사이를 떠다니는 먼지처럼 어느 틈에 내려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