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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혹은 시간의 정지

등록일 2016-12-23 02:01 게재일 2016-12-2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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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강일 서울대 강사

역 광장에는 시계탑이 있었다. 시계가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가지고 있는 시계의 시간을 믿을 수 없었다. 요즘처럼 휴대폰이 알아서 표준시간을 맞춰주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기차와 같이 시간을 꼭 지켜야할 때에는 시계탑 아래에서 만나는 것이 가장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서로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더욱 더 시계탑이어야 했다. 고층건물이 없었던 시대에 사람들의 눈에 가장 잘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저렇게 높은 것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무려 시계 `탑`이지 않는가!

그러나 역 광장의 중심을 차지했던 시계탑은 이제 한 구석으로 물러났다. 과거의 시계탑이 볼품 없는 모양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에만 충실했다면, 오른쪽의 시계탑은 조형성을 더 중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시계대신 유려한 기둥과 근처 분수의 물줄기에서 드러나는 곡선의 관능을 바라본다. 현재와 과거는 그렇게 분리되고 있다. 언젠가 시계탑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시계를 지니고 있으니까 말이다.

시대는 그렇게 흐른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말이다. 그러니 시간을 다시 거슬러 오른다 해도 우리는 우리가 처음 있었던 곳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기실 흐름 속에 있으니, 처음 있었던 곳조차 없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시계탑에 대해서라면 베냐민만큼 멋지게 말하긴 힘들겠다. 그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역사의 연속체를 폭파한다는 의식은 행동을 하는 순간에 있는 혁명적 계급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대혁명은 새로운 달력을 도입하였다. 달력이 시작하는 날은 역사적 저속촬영기로서 기능을 한다. 그리고 회상의 날들인 공휴일의 형태로 늘 다시 돌아오는 날도 근본적으로 그와 똑같은 날이다. 따라서 달력들은 시간을 시계처럼 세지 않는다. 달력들은 역사의식의 기념비들이며, 이 역사의식은 유럽에서 100년 전부터 가장 희미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7월 혁명 시절만 해도 이러한 의식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 일어났었다. 처음 투쟁이 있던 날 밤에 파리 곳곳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동시에 시계탑의 시계를 향해 사람들이 총격을 가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 목격자는 시의 운율에서 영감을 받은 듯이 당시를 이렇게 적고 있다.

누가 믿을 것인가! 사람들 말로는 시간에 격분하여

새 여호수아들이 모든 시계탑 밑에서

그날을 정지시키기 위해 시계 판에 총을 쏘아댔다고 한다.

▲ 대한의원의 시계탑. 시간은 정지를 모르지만 우리는 때로 시간을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 대한의원의 시계탑. 시간은 정지를 모르지만 우리는 때로 시간을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혁명이 있었던 시간, 왜 사람들은 시계탑을 향해 총격을 가했던 것일까. 혁명은 일종의 정지다. 역사라는 연속적 흐름을 끊어내고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이 혁명이다. 프랑스인들은 그 정지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더이상 구체제의 법이 작동하지 않는, 멈춰버린 그 진공의 시간을 사람들은 온전히 누리기 위해 시계를 박살낸 것 같다.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고, 오로지 가능성만이 팽창해진 그 유보의 순간들을 말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은 그러한 가능성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려고 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들 모두가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무구와 무위의 공백들은 훼손된다. 다시 시간을 멈추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과 피가 필요하다.

지금 전국에서는 연일 촛불이 불타오른다. 그 촛불은 대통령의 시간을 멈추어놓았다. 대통령의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일들이 촛불로 인해 멈춰졌다. 그런 점에서 촛불은 혁명이다. 대통령이 친구랑 놀았다고 잘못될 것은 없다. 하지만 그 친구가 연설문을 써주고, 국가 비상사태에도 그 친구들과 놀다가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방기했다면, 나아가 그 친구들이 권력을 주물렀다면, 이것이 왜 잘못이 아니란 말인가? 그 친구들이 개입한 것이 1%밖에 안 된다는 말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인정이다. 그 1%가 무엇인지 소상하게 밝혀질 필요가 있다. 지금 촛불은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넘어 대기업과 정부의 유착을 밝히라고 말하며, 재벌에게 더이상 특혜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촛불이 있는 한 대한민국은 건재할 것이다. 촛불을 들 줄 아는 현명한 국민이 있는 한 우리나라는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부디 이 현명함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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