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우리의 환경에서 살펴보자.
실족시키지 말아야 한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족시키는 자에게 화가 있다.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시키면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들어가라고 했다.
죄를 범하거든 책망하고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했다.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문제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해결해야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난후 자신들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믿음이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 하니”. 이 말은 제자들이 믿음을 양적인 개념으로 보고 자신들의 믿음 위에 믿음을 추가해 달라는 것이다.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믿음이 없는데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들의 믿음위에 더하여 달라고 했다.
믿음을 더해 달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예수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했다. 겨자씨 믿음은 생명력과 잠재력이 있다. 힘이 있다. 자란다. 희망이 있다. 예수님은 믿음의 양을 요구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의 질을 말씀하셨다. 작은 씨앗이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기에 능력이다. 그 믿을 통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우리의 믿음은 어떤가? 실족시키지 않고, 책망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면 용서 할 수 있는 이런 믿음의 질이 있는가?
믿음은 오감으로는 느낄 수 없다. 삶으로 보여 줘야 한다. 겨자씨 믿음은 종으로 사는 것이다. 종은 주권과 소유권이 없다. 절대적 복종이다. 사례가 없다. 무익한 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도 종으로 오셨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우리는 종이 되기 위해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생명이 있는 믿음은 종의 자세를 가지고 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 믿음의 질을 높여라. 영혼의 때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
말씀 순종하는 일에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제자들은 왜 믿음을 더해달라고 했는가?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