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에 대한 이야기들로 시끄럽다. 가끔 탄핵 이후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한국의 정치가 경제를 주도하거나 영향을 주는 부분은 거의 없다. 그 만큼 한국의 정치는 삼류다. 정치인들이 권모술수에 능하고, 남을 비방하는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런 능력을 측정하는 올림픽이 있다면 한국의 정치인들은 메달권에 들 것이며 금빛에 욕심을 낼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세월호 7시간을 밝히려는데 골몰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가슴 아픈 사건이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세월호다. 지금 가라 앉는 중이다. 한국의 산업 중 이익이 의미있게 증가하는 것은 반도체와 석유화학 뿐이다. 그것도 이번이 마지막 사이클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집에서 한숨 짓고 있다. 이것은 가슴 아프지 않은가?
한국 경제는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구조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하드웨어(hardware)의 한계를 인식하고 벤처 붐(venture boom)을 조성하려 했으나 생태계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노무현 정권은 산업구조에 대해 관심이 없었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더 박정희스러웠다. 즉 한국기업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보다 주어진 환경에 빨리 적응해가는데 익숙한 후발업체(technology follower)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이렇게 밖에는 못할까?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에 있다. 지난 수십년간 “주입식 교육은 안된다”고 외쳤으나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회가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교육이 바뀐단 말인가. 도전보다는 복종을 덕으로 아는 사회에서 대학 졸업생들은 공무원이 되고 싶어한다. 또 너무 많은 돈이 재벌에게 가 있다. 그들은 돈이 되는 현재의 사업(cash cow)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다. 계열사들에게 사고만 치지 말라는 주문을 하기 일쑤이다. 한국의 재벌은 10여 년 전부터 해체가 시작됐어야 했다. 그 때부터는 역기능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난을 받는다면 이 문제 해결에 게을렀던 것이 주 요인이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인들이 겸손하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만나 보면 겉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이 겸손이 배어있다. 90년대 저성장을 경험한 이후 그렇게 되었다. 성경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일본인들이 저성장 이후 조그만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복을 얻게 된 것이다. 이제 한국인들이 그렇게 될 것이다.
와타나베 부인이 일본의 저성장 저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해외 채권투자, 그리고 환투기를 했다. 위험에 대해 극도로 보수적인 일본인들이, 그것도 여자들이 환투기를 할 정도면 그 당시 고통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제 한국 투자자들도 해외자산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최근 미국이 금리를 올리며 세계 자금은 미국으로 쏠리고 있다. 과거 저금리를 유지한 이유는 금융기관, 기업, 가계의 부실을 막기 위함이었다. 사실 그 동안 부실이 얼만큼 치유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부터 금리를 조금씩 올리며 어디서 부실이 튀어나올지 보자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금리가 올라갈 때 먼저 항복하게 될 희생양은 미국이 아니라 신흥국 또는 유럽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글로벌 증시는 함께 움직이는 동질성이 강했지만 이제는 미국 투자 수익률이 차별적으로 높을 수 있다. 적어도 달러환산 수익률로는 그러할 것이다.
한국의 개인 투자자가 미국의 개별주식에 투자하는 데는 정보의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미국 펀드나 인덱스(index)에 투자하라. 한편 개별주식 중에서도 미국 아니면 할 수 없는 사업에 투자하라. 이들은 독점적이고, 수요도 매우 안정적인 사업이다. 미국의 군수나 콘텐츠 업체들을 예로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