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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총화와 국민대통합

등록일 2016-12-02 02:01 게재일 2016-12-0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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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풍으로 곱게 물든 길이었는데, 지난달 30일 이렇게 얼음이 얼었다.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라 했다. “서리를 밟을 때가 되면 얼음이 얼 때도 곧 닥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의 징후가 보이면 머지않아 큰일이 일어날 것임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이 제 때 전해졌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풍으로 곱게 물든 길이었는데, 지난달 30일 이렇게 얼음이 얼었다.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라 했다. “서리를 밟을 때가 되면 얼음이 얼 때도 곧 닥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의 징후가 보이면 머지않아 큰일이 일어날 것임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이 제 때 전해졌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79년 12월 31일 희자매가`실버들`로 MBC에서 십대가수상을 받을 때, 성우가 그네들의 좌우명이 (무슨 새마을 운동이라도 되는 듯) “언제나 최선을 다하자”라는 것을 낯도 안 붉히고 잘도 말했다. `노오력`(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하라는 말)과 `열정페이`(열정을 빌미로 한 저임금 노동을 이름)가 유일한 가치였던 시대, 정태춘은`촛불`로 신인가수상을 받았다.

성우의 짧은 설명과 함께 노래가 시작되고, 정태춘은 머쓱함을 숨기기 위해 심취한 것으로 가장하여 노래 속으로 숨어버린다. 노래가 마지막에 이르면 돌연 여자가수들이 출현하여 그네들의 팔뚝만한 초를 들고 트롯풍으로 몸을 흔든다. 그 몸짓이 이 노래의 가사와 얼마나 어울리지 않을지 상상해보시라.

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오면

창가에 촛불 밝혀 두리라

외로움을 태우리라

나를 버리신 내 님 생각에

오늘도 잠 못 이뤄 지새우며

촛불만 하염없이 태우노라

이 밤이 다 가도록

사랑은 불빛아래 흔들리며

내 마음 사로잡는데

차갑게 식지 않는 미련은

촛불처럼 타오르네

…후략…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정태춘이 무대를 빠져나가면 당시 사회자였던 변웅전은 기다렸다는 듯 이런 말을 날린다. “융화와 총화의 80년대를 앞두고 이렇게 서로서로 상부상조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과연, 명불허당! 도대체 이 노래의 어디에 융화와 총화가 있다는 말인가. (정태춘의 성향과 그의 이력을 보건대, `나를 버리신 님`이란 민주주의와 같이 정치적 지향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융화와 총화! 이 노래를 이렇게 가져다 붙일 수 있을 만큼 변웅전은 날렵했고, 그는 이때부터 보수적인 색채를 드러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러 변웅전은 충청도를 기반으로 하여 3선 국회의원이 되었고, 선진당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2012년 11월 이회창과 더불어 새누리에 들어가면서, 그리고 다시 `박근혜`를 `박근혜 대통령`으로 만들면서 진정한(?) `국민총화`를 실현하였다. 그러니까 `국민총화`라는 말은 `국민대통합`이라는 말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 한 번 결실을 맺은 셈이다.

그렇다면 국민총화라는 말은 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백승종(`국민총화`를 기억하라), 1933년 일제의 육군대신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가 내선일체를 역설하기 위해 `국민력(國民力)의 총화`라는 말을 사용하면서부터라고 말한다. 그 후 해방 전까지 실로 `총력전`의 시대였다. 1969년 4월, 이미 4·8항명으로 공화당에서 쫓겨난 김종필은 불현듯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영도력과 함께 `총화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고, 그와 함께 이 말은 부활한다. 1971년 다까끼 마사오(高木正雄)가 `국가비상사태`가 이 시대의 숙명인 것처럼 큰소리 칠 때도 이 말은 함께 했다. 그리하여 “국민의 총화와 단결”이라는 말이 유행의 급물살을 타고 1970년대를 도도히 흘렀다. 박정희는 `국민총화`라는 말을 밀었다. 그가 `흉탄`을 맞고도 두 달이 지났지만, 이 말만은 죽지 않고 되살아나 1970년대의 마지막 날에도 잊지 않고 사용되었으며, 1980년대 다시 전두환, 노태우와 함께 이 말은 유전하였다.

▲ 공강일 서울대 강사
▲ 공강일 서울대 강사

1930년대부터 숱한 변화와 격변 속에서도 이 말은 `각설이`의 우편에 앉았다가 죽지도 않고 또 찾아왔다. 이 말은 실로 꿀과 젖같이 흘러, 저들에게 젖과 꿀이 되어 온갖 쇠하고 쇄할 것들을 살찌웠다. 무슨 일만 있으면, 정확히는 자신에게 불리한 일만 있으면 국민대통합을 외치던 대통령께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3차 대국민 담화문에서 처음으로 퇴진을 이야기하였다.

국민을 존경한다고 말씀하시며, 이제 그 무거운 직을 내려놓으려 하신다. `국민 대통합`, `창조 경제`, `문화 융성`을 외치시던, 그리하여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 오신 분이, 이제 퇴진을 말씀하신다니 늦은 감이 있지만 참 다행이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다는 분이, 그럼에도 스스로 내려오지는 않고, 국회에게 맡긴 것이 찜찜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다시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참 다행스럽다. 그와 더불어 총화, 융화, 통합과 같은 낡은 말들도 함께 쓸려가길 바란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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