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에게는 일생의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1장 13~15절을 보면 바울의 이런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로마에 가고 싶어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라고 말씀한 바처럼, 이런 저런 방해와 장벽으로 인해 아직까지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계속 시도하다가 이제 그 뜻을 이루지 못하니 이렇게 편지라도 써서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를 바울은 말합니다. “…. 그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이 듣고, 깨달아, 누리고 있는 생명의 복음, 그 복음에서 흘러나온 생명의 삶을 전하고 싶어서 입니다.
이미 로마제국은 이제 발흥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심장부인 로마는 더욱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런 곳 로마에 바울은 가지 못해 안달이 난 것입니다. 도대체 왜입니까? 본문 14절에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빚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그 삶이 완전히 뒤집어져 새 삶을 시작한 후에 생각해 보았겠지요.“도대체 나 같은 사람을 왜 하나님이 찾아오셨을까? 기독교인을 잡아 죽이려고까지 한 나를 왜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구원해 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에게는 그런 놀라운 은혜를 입을 수 있는 합리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은혜요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자신에게는 조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은혜에 빚진 자입니다. 그리고 어느날 깨달았겠지요. `아하! 나같이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나면서도 그것이 밤인 줄도 모른 체 방황하는 자들, 지혜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지혜에 갇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이 놀라운 복음 전하라고 나를 먼저 부르신 것이구나! 나는 그들에게 빚진 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아 주시고, 평생을 살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은혜임을 안다면 우리는 삶에서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나게 됩니다. 첫째, “내게 주어진 모든 삶은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다!”라는 깨달음입니다. 둘째,“이 놀라운 은혜의 빚을 어떻게 갚을까?”라는 거룩한 채무의식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갚으라 하지 않으십니다. 바울에게 당부하셨듯이 “너처럼 신음하고 고통하는 내 백성에게 갚으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