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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내가 되기 위해

등록일 2016-10-13 02:01 게재일 2016-10-13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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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석진신부·대구가톨릭대 교수
사제가 되어 대구에서 두 개 본당 보좌 생활을 하고, 볼리비아 산타크루즈 교구로 파견되면서 사실 여러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가장 큰 것은 아마도 두려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과연 사제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나 걱정이 아니라 말이나 문화에서 오는 어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중에서 저를 지금의 제 자신으로 만든 사건 하나를 나누고자 합니다.

산 프란치스코라는 공소(지금은 본당이 되었습니다)에 복사단 여자 아이 하나가 제게 뭐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이제 겨우 공부를 마치고 본당에서 일한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때인지라 무슨 말인지 잘 알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안한데, 다시 한 번 말해 줄래?” 여러번 다시 묻고 그 아이도 다시 말을 했지만 여전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안한데, 한번만, 더” “padre, no entiende nada.” 번역하면 “신부님, 아무것도 이해 못하네.” 하필 이 말이 어찌나 귀에 잘 들리던지, 그 말을 듣자마자 사실 화가 치밀었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무시당한 자존감, 제 자신에 대한 자책감 등 너무나 혼란스러운 마음에 그날 밤은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자 흥분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내가 화를 낸 것일까?` 결국 이유는 그 아이의 말이 아니라, 제 자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시하는 듯한 어린 아이의 말에 `내가 어른이고, 신부인데` 라는 생각을 가지고 들었으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있던 알량한 자존심, 그리고 쓸데없는 교만을 마주하며 많은 반성들을 했었습니다. 신자 분들이 사제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존대해 주시고, 많은 사랑을 주시는데 마치 그것이 `내가 잘나서`, `내가 멋져서`, `내가 신부니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교만에 빠져 있었던 제 자신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 때 그 아이가 고마웠고, 하느님께 감사드렸으며 비로소 제가 참된 제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가 무슨 큰 위치에 있는 마냥 남을 무시하기도 하고, 또 조금이라도 무시당한 것 같으면 감히 내가 누군데 하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각자가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드러내셨고, 그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자 당신의 삶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내가 하느님인데, 어디 감히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 대하느냐`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참된 예수님의 모습은 바로 겸손의 모습이었고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참된 내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겸손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겸손을 통한 자유로운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 때 우리는 진정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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