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주 전에, 오래간만에 북한산에 갔던 일을 생각한다. 그날 백석파 시인들과 함께 몇 달만에 북한산으로 향했던 것이다. 백석파라니 이 무슨 조직이란 말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우연히 최동호 시인 제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다들 백석의 시를 좋아하고 연구까지 한 것을 알게 됐다.
즉석에서 우리, 백석파를 결성하자, 자격 요건은 백석에 관한 것을 뭐라도 쓴 사람이면 되고, 산을 좋아해야 하고, 그 표식으로 주머니 속에 흰 돌 하나씩 넣어 가지고 다니기로 하자, 하고 농담을 한 것이 백석파가 된 것이다.
이렇게 인스턴트식으로 만들었으니 조직원이 몇 될 리 없고 지속적으로 유지될 리도 없다. 필운동에서 `백석 흰 당나귀`라는 카페를 가진 시인 박미산, 백석과 정지용의 기행시에 관한 연구 논문이 곧 출산 직전인 정수연 선생, 러시아문학 박사면서도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백석 시와 샤머니즘의 관계를 고려대학교 박사논문으로 쓴 라리사 피사레바 중앙대학교 교수, 그리고 나.
이게 그 화려한 멤버의 전부이다보니 매번 회원난을 겪게 마련. 그래서 산에 갈 때마다 이 사람도 초청하고 저 사람도 초청하는 구걸 행각을 벌이는데, 지난번에는 김수영 연구 뜻을 가진 홍승진 군을 초청했다 모모한 관계의 사람이 영국에서 귀국하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뒤늦은 통보를 `당했다.`
결국 네 사람이서 서울 안쪽 아닌 바깥쪽 북한산 쪽을 올라가기로 한다. 늘 가는 구기터널 앞 북한산, 승가사 방향 말고, 연신내 구파발 바깥으로 나가 국사당, 사기막골 쪽으로 해서 이른바 `숨은 벽` 능선까지 가보기로 한 것이다.
오후 한 시에 만나니, 국사당 앞까지 차를 달려오기는 왔지만 벌써 두 시. 가을해만 해도 여름해에 비하면 확실히 짧다. 나도 모르게 랜턴을 찾았지만 역시, 뭣도 찾을 때는 없더라도 등산가방에서 사라지고 없다. 어쨌든 해 떨어지기 전에 내려와야 한다.
국사당 쪽으로 해서 산을 찾아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어쩌면 그렇게 발놀림이 편한지 모른다. 경사가 완만하기 그지없어 북한산이 맞나 할 정도인데, 벌써 밤나무에 밤이 익어 떨어져 툭툭, 데굴데굴 굴러 떨어진다. 누가 가을 산에 밤나무 있는데 가면 밤송이 맞는 것 조심해야 한다더니 여기 저기 툭툭 떨어지는 소리는 확실히 밤이 익어 떨어지는 소리다. 발밑에는 이미 알이 터져 사람들이 가져나고 남은 빈 송이들이 흩어져 있다. 가을이다. 확실히. 완연히.
사기막골이라는 이름도 정감이 가는데, 어디가 거긴지 모르게 벌써 지나가 버리고 갈림길 이정표를 보니 드디어 저쪽으로 갈라서면 숨은 벽 가는 곳이란다. 대체 숨은 벽이 뭔가 하면 일요일마다 북한산만 한 오 년 타고 다니는 정기복 시인 친구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에 가로 놓인 능선으로 두 봉우리 사이에 들어 있어 밖에서는 보이지 않고 산속으로 꽤 들어가고 나서야 보인다 해서 숨은 벽이라 한다고 했다던가.
과연 바야흐로 숨은 벽이라는 게 나타난다. 숨기는 숨었는데 왜 벽이라고 했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과연 벽처럼 턱 하고 막아서는 느낌을 줄 것 같은 불쑥 솟은 암반의 벽이 길게 백운대 쪽으로 늘어서 있다. 그 좁은 능선 위로 사람들이 걷는 게 보이는데 그렇게 아슬아슬 할 수 없다. 과연 우리도 저 위를 저렇게 걸어갈 수 있을까.
그러나 숨은 벽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산길을 잘못 들어 아래 쪽으로 향했다 다시 올라가게 된 탓에 숨이 턱에 받치는 오르막길을 쉬다 걷다 하면서, 자기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다녀오라는 사람까지 억지로 끌어당겨서야 드디어 숨은 벽에 당도했다.
숨은 벽을 넘어 그 위에 오르니 과연 벽 아래 세상이 보이는 것도 같다. 사실, 그날 내가 백석파들을 이끌어 숨은 벽으로 향한 것은 생각이 따로 있었으니, 숨은 벽을 타고 숨은 벽 능선 위에 오르니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았다.
벽, 그것도 숨은 벽, 이것이 인생의 문제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