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br>라오스 ①
채 일주일에 미치지 못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여행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래서였다. 몇 년이 흐른 후 다시 라오스를 찾았다.
그때는 이전 여행보다 2배의 기간인 보름을 머물렀다. 조용하고, 선량하며, 부끄러움 많은 사람들이 사는 라오스.
두 번째 방문에선 라오스 북부를 여행했다.
고풍스럽고 매혹적인 도시 루앙프라방.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시주를 받으러 다니는 어린 스님들에게 과자와 찰밥을 나눠주는 재미에 빠져 6일을 머물다가 무비자 여행기간 만료가 임박해서야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갔다.
이때 선택한 월경(越境)의 방법은 `슬로우 보트` 타기.
그 선택은 탁월했다. 만약 루앙프라방에서 출발해 치앙마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면 절대로 볼 수 없었을 장면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산중턱에 불을 질러 화전을 일구는 원시적인 마을 풍광, 대나무에 줄 하나만 매달아 메콩강 지류의 물고기를 잡는 원초적 낚시법을 선보인 소수민족 청년, 이틀간의 동행에서 친구가 돼버린 태국 여성 핌(pim)과 팜(pam).
평생 잊기 힘든 추억을 만든 `슬로우 보트 여행`이었다. 그 길고 긴 뱃길은 잊을 수 없는 몇 가지 기억을 기자에게 남겨줬다.
♠ 엄마를 위해 무엇을 해봤던가?
루앙프라방을 출발한 `슬로우 보트`가 중간 기착지 팍뱅에 도착한 시간은 해질 무렵. 극장과 서점은 물론, 그럴싸한 놀이문화 하나 없는 시골마을. 라오스 토속주 `라오라오`에 맥주를 섞어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든 터라 이튿날 새벽 일찍 잠이 깼다. TV도 없는 낡은 호텔방이 무료해 강가로 산책을 나갔다.
거기서 보았다. 엄마는 다 떨어진 고무 슬리퍼, 아들은 맨발인 모자(母子)가 산에서 해온 것인지 적지 않은 장작을 쌓아놓고 커다란 바구니에 나눠 담고 있었다. 산악지대가 대부분인 라오스 북부의 4월은 한국의 늦가을처럼 춥다. 양말도 신지 않은 두 사람의 발은 분명 시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뭔가. 엄마는 자기 바구니에, 아들은 제 바구니에 더 많은 장작을 담으려 하고 있었다. 서로 무거운 걸 들고 가겠다는 소리 없는 싸움. 엄마는 장작을 이고, 아들은 장작을 지고 그들은 또 얼마나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 걸까?
그리고, 기억의 회로를 뒤로 돌렸다. 마흔 살이 넘은 기자가 “엄마”라고 부르는 한 여자가 불현듯 떠올랐다. 공자가 말한 바 세상사 미혹에서 자유스러워진다는 불혹(不惑)을 넘겼지만, 이 나이가 되도록 단 한 번도 엄마가 진 세상사 무거운 짐을 나눠 들려 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파왔다.
해서, 10살짜리 꼬마만도 못한 기자는 그토록 착한 아들과 선량한 엄마 앞에서 감히 사진기 따위를 들이댈 수 없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라고 물었다면 99%의 라오스 사람들이 그렇듯 그 모자도 하던 일을 멈추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감히 누가 있어 그 `위대한 엄마와 아들`을 주제넘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을까?
♠ 대책없이 착한 사람들
라오스는 딱 한마디로 정의가 가능하다. `착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여기엔 부연이 필요 없다. 가보면 알게 된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닳고 닳은 장사꾼도 보통의 한국 사람들보다 훨씬 순박하고, 친절하며, 선량하다.
그날 아침, 낡은 밥상의 소박한 식사자리에 끼어 앉아 얻어먹은 찰밥의 맛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찍어 먹은 고추 소스의 향까지.
이제는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조모의 정을 그 할머니에게서 대신 받았기 때문이리라.
팍뱅에선 웃는 모습이 선한 아주머니 한 명을 만났다. 생선, 돼지고기, 소시지, 메추라기 따위를 숯불에 구워 파는 조그만 식당의 주인이었다.
“배가 떠나기 전에 뭘 좀 먹어야지”라며 급히 들어간 식당. 하지만, 온통 바비큐뿐이었다. 아침부터 기름기 흐르는 고기를 먹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돌아 나오려는데, “다른 곳에 가서 먹고 싶은 음식을 사와라. 무거울 테니 가방은 내가 지켜줄게. 사와서 여기서 먹어”라고 했다. 서툰 영어와 손짓으로 전한 의사 표현.
순박함과 선량함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나라. 가난 속에서도 환한 웃음을 잃지 않는 라오스 사람들. 단 두 번의 여행만으로 기자는 남은 생을 라오스에서 보내고 싶어졌다.
라오스는…
인구는 약 650만 명, 면적은 23만6천800㎢(한반도의 1.1배)로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지대다. 1인당 국민소득이 1천700달러에 채 미치지 못하는 아시아의 빈국 중 하나.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은 경제적 상황과는 별개로 낙천적이다. 또한 순박하고 환한 미소로 외국인을 반긴다.
라오족이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랴오퉁족(22%), 랴오숭족(9%), 베트남계(1%)도 함께 생활한다. 화폐 단위는 킵(Kip). 1달러(1천110원)는 약 8천 킵이다.
1353년 란상왕국(Lan Xang)으로부터 시작된 라오스의 역사는 1800년대 후반 프랑스의 침략과 이어진 식민지배, 그로부터의 해방까지 숨 가쁘게 전개된다. 프랑스의 지배로부터 온전히 벗어난 때는 1949년 7월.
이후 각각 미국과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우파와 좌파의 대립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좌파인 `라오스 애국전선`이 1975년 정권을 잡았다. 현재 집권당은 인민혁명당.
많은 농민이 벼농사를 짓기 때문에 한국인들처럼 밥을 주식으로 먹는다. 서민들은 찹쌀로 지은 밥 `카오니아우(Khao Niew)`를 다진 고추와 생선액젓으로 만든 소스에 찍어 먹는 걸 즐긴다.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비엔티안과 방비엥, 루앙프라방 등엔 서양식 레스토랑과 중국 요리를 파는 음식점도 흔하다. 물론,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도 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