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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근 불가원

등록일 2016-08-18 02:01 게재일 2016-08-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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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세상을 살아가는 일, 쉽지 않다. 나이를 먹을수록, 일이 늘어갈수록 숨을 쉬는 일조차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동생에게 직접 들은 말이다. 몇 십년에 걸쳐 학자들이 바통을 이어가며, 도대체 삶을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요건이 무엇인지를 연구했단다. 이걸 네번째 이어받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것은 돈이 많은 사람도, 사회적으로 높이 올라간 사람도 아니란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히, 잘 풀어가는 사람, 잘 맺어가는 사람이 삶을 가장 행복하게 여긴단다.

동생에게 이 말을 듣고 여러가지 생각이 났다. 그중에서도 과연 나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 사람인가, 하고 생각했다.

아집이 세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뿐 아니라 원하는 것에 대해서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애써, 무리를 해서라도 의미를 둔 일은 해내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세상과 리듬을 맞추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세상은 반 발만 앞서가거나 뒤서가야지 한발, 두발을 먼저, 늦게 뛰면 탈이 나기 쉽다. 고립되고 빈축을 사기 쉽다.

남들이 좌향좌 할 때 우향우 한 적도 많고 우향우 할 때 좌향좌 한 적도 많다. 다 세상의 흐름이나 경향을 모르고, 또 알고도 어긋내서 벌인 일들이다.

하지만 또 다른 유형의 잘못도 무척 많이 범해 오기도 했다. 어차피 한 사람으로서 내가 완전할 수 없을 바에야, 그 사람 관계라는 것도 다 좋을 수 없고,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도 없다. 그러니 그런 기대일랑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부류는 불가근해야 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가까이 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자기 보기에 옳지 않은 사람, 섞여 봤자 좋을 게 없는 사람, 실속없는 사람, 출세에 눈 먼 사람, 인색한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 수시로 변하는 사람, 자기 이익에만 매달리는 사람. 이런 사람은 가까이 하면 안 된다. 가까이 하면 안 되는 사람만 피할 수 있어도 세상살이는 꽤나 편한 것이 된다.

둘째 부류가 있다. 불가원해야 하는 사람이다. 즉 멀리 하면 안되고 늘 가까이 해야 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일까? 무엇보다 정 깊은 사람, 따뜻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 관심을 가질 줄 알고 불쌍한 사람, 부족한 사람, 괴로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지 못해 스스로를 힘들어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가까이 할수록 좋다. 또,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일, 원하는 것이 있어도 생각해 봐서 도리에 어긋나면 삼갈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은 큰 잘못을 범하지 않으니 큰 화를 입지 않을 수 있다.

그럼 세번째 부류는? 불가근도 해야 하지만 불가원도 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가까이 해서도 안되지만 멀리 해서도 안된다는 말씀이다.

살아가다 보면 꼭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이 있다. 안 만나면 좋은데 피할 수 없이 관계를 맺게 되고 지속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긴다. 그때 이런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불가근하되 불가원도 해야 한다. 가까이 하지 않고 멀리만 하면 원한을 품고 앙갚음을 하고 가끼이만 하고 멀리 하지 않으면 그의 나쁜 성정에 휘둘러 자기도 같은 부류로 떨어질 수 있다. 그러면 자기도 남을 괴롭히고 남의 불행을 도모하고 즐기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인가? 냉혹한 사람, 잔인한 사람, 선악의 판단 없이 분노에 사로잡히는 사람, 남의 불행을 기쁨으로 아는 사람, 남의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자기가 돌을 던지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 자기보다 약한 자를 골라서 괴롭힐 줄 아는 사람, 자기보다 강한 자에 야비할 정도로 고개 숙이는 사람, 겉으로 말 않고 숨어 말하며 목적을 도모하는 사람. 레슬링 식으로 말하면 상처 입은 곳을 골라 가격하며 즐거워 하는 사람.

옛날에는 옳은 사람을 가리는데 힘썼다. 하지만 내 판단을 내 스스로 신뢰할 수 없게 되자, 가까이 할 수 있고 가까이 해야 하는 사람의 기준이 달라졌다.

그리고 더 교묘해져야 함을 절감한다. 멀리 하는지 가까이 하는지도 모르게 해야 한다는. 슬프고 슬퍼서 슬프기 짝이 없는.

동생 말대로 사람의 행복은 관계에 달린 것을. 좋은 관계란 것이 이렇게도 힘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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