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세상은 온통 밀레니엄 시대라며 들썩이던 때에 군입대를 했습니다. 훈련소 생활은 상상하던 그 이상이었고, 고된 훈련과 규칙적이고 제한된 생활 속에서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고, 여유있게 밥 먹고, 친구들과 맘껏 통화하고, 방바닥에 누워있고, 초코파이 두 개 먹는 것과 같은 당연하고 평범한 것들에 대한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군대뿐만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사람은 무언가 결핍되거나 잃었을 때 그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잃거나 떠나보내면 그 사람의 빈자리가 보이고, 건강이 악화되면 잘 먹고 잘 걷고 하던 그때를 떠올립니다. 그 이유는 끊임없이 뭔가를 추구하고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미리 소중함을 누리지 못하고 지나서 후회하게 됩니다. 마치 시지프(Sisyphe) 신화에서 한 사람이 정상을 향해 돌을 굴려 올라가지만 올라가지 못하고 굴러 떨어지고 또 올라가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에 대해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게 중요합니다. 굴러 떨어질 돌덩이에 집착하기 보다는 이미 내게 있는 삶의 의미와 가치들을 누리며 사는 삶에 진정한 행복이 있고 삶의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 루카 17, 11-19 에는 열 명의 환자들이 예수님의 치유를 받아 낫게 됩니다. 그러나 단 한 명만 예수님의 구원보증을 받는데 그 사람만 다시 찾아와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아홉 명은 왜 오지 않았을까요? 치유의 기쁨이 너무 커서 예수님을 잊어버렸을 수 있고, 그동안 아파서 못한 일들을 처리해내느라 분주 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나머지 아홉 명은 예수님의 개입이 있었음에도 결국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갔고, 그 안에 예수님은 작은 부분이었습니다.
반대로 다시 찾아와 엎드려 감사하던 한 명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 안에는 예수님이 자리 잡았고, 앞으로 어떤 고통이나 환난이 와도 거뜬히 이겨나가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나쁜 것은 짧게 가져가고, 좋은 것은 길게 가져가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고`, `나쁨`이 복잡하게 섞여있는 현세를 살면서 `나쁜 것`들에 매이지 말고, `좋은 것`들에 주목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맘껏 감사하고 즐기면서 오늘을 삽시다. 지금 고마워할 줄아는 그런 마음에 예수님의 구원은 가까이 있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