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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시간과 어머니

등록일 2016-08-05 02:01 게재일 2016-08-0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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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을 입은 강아지는 나이가 많다. 앞선 강아지가 아닌 척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 속으로 아침도 밝아온다.
▲ 옷을 입은 강아지는 나이가 많다. 앞선 강아지가 아닌 척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 속으로 아침도 밝아온다.

△왜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지?

우리는 어떨 때는 시간이 빨리 간다고 말하고 또 어떨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을 개인적인 느낌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뇌과학자들은 뇌의 처리 속도가 나이가 들수록 느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나는 생물학자들이 주장하는 `특성시간`이라는 개념에 더 끌린다.

`특성시간`은 동물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시간의 길이다. 특성시간을 구하려면 평균 신장을 걷는 속도로 나누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하루살이의 특성시간을 구하면 0.00025초며, 150년을 사는 거북이는 4초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살이는 1초 동안 수없이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거북이는 1초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필름영화의 경우 1초에 24장의 사진이 지나간다. 필름영화는 정지된 사진을 이어 붙여 빠르게 돌려서 정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야말로 영화는 움직임(movie) 그 자체다. 만약 하루살이가 영화를 본다면 `뭐 저렇게 느려`라고 생각할 거고, 거북이는 `뭐가 저렇게 빨리 움직여`가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라고 아주 느리게 말할 것이다. 복장이 터질 정도로 느리게 말이다.

그러면 사람의 특성시간은 얼마나 될까? 사람의 평균 신장이 1.6~1.7m 정도니까 이것을 평균적으로 걷는 속도인 3.6km/h로 나누면 되는데 약 1.7초이다. 이것은 자신의 키만큼 걷는데 걸리는 시간이므로, 빨리 걸으면 그만큼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고 걸음이 더디다면 그만큼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특성시간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다거나 느리게 가는 것 같다고 느낀다.

오랜만에 쉴 새 없이 뛰고 나서 시계를 보면 시간이 너무 더디게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며, 쌩쌩 소리를 내며 달리는 아이들이 빨리빨리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도, 빨리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배부른 생각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삶은 가혹하고 나이가 들수록 더뎌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은 하나같이 거북이의 걸음걸이를 억지로 배워버리고 만다. 어쩌면 나의 어머니도 그런 어른일 것이다.

△어머니보다 빨리 달아나는 시간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대구에 간 일이 있다. 못난 아들은 자동차도 한 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문제는 우리 동네에서 읍내까지 가는 버스가 하루에 네 대 밖에 없다는 거다. 아침 9시에 첫차를 타서 오후 5시 30분에 있는 막차를 타려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8시간 정도.

읍내까지 40분, 읍내에서 터미널까지 10분, 대구까지 가는 데 1시간 10분, 대구터미널에서 약속 장소까지 30분, 도착해서 볼일을 보는데 두세 시간……. 이렇게 계산하면 그리 넉넉하진 않지만 그래도 두어 시간 가량의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그날 어머니는 내내 뛰다시피 하셨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볼일을 보고 나오자마자…… 마라톤 선수 같은 어머니를 경보 선수처럼 따라가며 “엄마, 그렇게 빨리 뛰지 않아도 돼요.” 그러면, 어머니는 “응 그러냐?” 라고 대답하셨지만 그때뿐, 여전히 재게 발을 디디셨다.

▲ 공강일 서울대 강사
▲ 공강일 서울대 강사

어머니보다 스무 해 이상 덜 산 나는 당신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어렴풋이는 알 것 같다. 당신은 당신의 늙음을 온몸으로 절감하고 계셨을 것이다. 어느 때부턴가 당신보다 더 빨라지기 시작한 시간 앞에서, 하루를 쪼개고 또 쪼개어 그 시간을 따라잡으려 필사적이게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를 저런 버스가 아니라 내 차로 모시려면 지금부터 나도 더욱 필사적이 되어야 할까. 나이 든 아들의 공부는 진척되기는커녕 어머니만큼이나 속절없이 노쇠해가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비좁고 답답한 삶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생이 늙어가는 속도를 좀체 따라갈 수 없어 슬프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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