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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등록일 2016-08-04 02:01 게재일 2016-08-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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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일본 가나자와에서 교토 쪽으로 넘어오려면 쓰루가라는 곳에 닿기 전에 아주 긴 터널이 있다. 이 길을 다니는 기차 특급 이름은 썬더버드. 번개처럼 빠르게 달려도 캄캄한 굴 속을 한참을 달려야 이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다.

굴속을 달리는 기차의 굉음은 대단하다. 쇠붙이가 쇠붙이 위를 달려가며 레일에 바퀴가 무서운 속도로 굴러갈 테니 소리가 큰 것도 당연하다. 이 소리가 굴 속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회오리를 친다.

끼이끽 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휘익휘익 하는 소리 같기도 한 소리를 들으며 굴속을 달리노라면 스마트폰에 인터넷 연결을 할 수 없다는 표시가 뜬다. 한동안 어디에도 연결할 수 없는 질주가 계속된다. 이 어둠속에 앉아 나는 마치 이 어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을 느낀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내 삶에도 그런 터널 같은 암흑 속을 달리던 때가 있었다. 때는 아마도 스물일곱 즈음부터 서른일곱 즈음이었을 것이다. 인생의 앞에 아무 것도 펼쳐져 있지 않고 어둠만이 막아서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속에서 누구의 손도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어둠 속 행군의 시간이 있었다. 그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누구의 탓도, 나만의 탓도 아니었다. 나와 타인들의 의지를 뛰어넘은 곳에 나를 둘러싼 암흑같은 상황이 놓여 있었다. 그게 누구라도 그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강렬한 절망감 속에서 그래도 견뎌야 한다고 입술을 깨물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는 갔다. 그 캄캄한 굴속에서 나는 빠져 나왔다. 나 자신도, 타인도 미워하고 용서할 것이 없다.

시인 임화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1930년에 그는 볼세비키가 되고 싶은 시인이었다. 볼세비키처럼 시를 쓰고 예술가 단체를 볼세비키 조직처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또 가당찮은 짓인지 몰랐던 그는 그런 자신의 신념이 만든 어두운 터널 속을 폐결핵을 안고 나아갔다. 친구 김남천이 차라리 감옥에 갇혀 혁명적 투사로서의 빛에 감싸여 있을 때 그는 잡혀가 오래 수감되지도 못하는 몸으로 세인들의 의혹의 눈초리를 받으며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도 그는 병든 몸으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은 쉽다, 삶을 훌륭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사회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1940년부터1945년까지를 문학사는 암흑기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 암흑을 벗어났다고 상정되는 위치에 서서 뒤를 돌아보며 하는 소리다. 일제 암흑기에 우리는 하마터면 우리의 말과 글을 잃어버리고 정지용이 시 `백록담`에서 말했듯 우리 새끼들을 털빛깔이 다른 어미한테 맡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도 우리는 빛을 온전히 되찾지 못했다. 시대를 구가하는 사람들은 벌건 대낮을 살고 있다고 느낄지라도 그 대낮에 등불을 들고 어둡다, 어둡다 탄식을 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과연 우리의 지나간 시대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어떤 곳일까? 긴 터널의 끄트머리일까? 한복판일까? 어둠을 벗어난 들판일까?

분명 나는 옛날의 그 어둡기 짝이 없던 터널은 나와 있는 것 같은데, 자꾸 무엇인가 얼굴을 휘감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떼어내려고 애쓰듯 헛손질을 계속한다.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자꾸 벗어버리고 싶은 터널의 거미줄이 얼굴에 휘감겨 있는 듯 느껴지는 것은 착각에 불과한 것일까? 아직도 내가 어둠 속을 헤매고 있기 때문인 것일까?

하늘 바깥에 하늘이 있다고 어둠 바깥에 더 깊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어두운 터널 속 행군이 사람의 운명이라면 누구를 원망할 것도 탓할 것도 없다.

우리가 어떤 질곡 속에 놓여 있다 해도 그것은 그 누구의 탓이 아니라 우리가 원래 그렇게 살도록 생겨난 족속인 때문일 것이다. 과연 터널의 어둠은 숙명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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