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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

등록일 2016-07-28 02:01 게재일 2016-07-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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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br /><br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지금은 기찻길도 케이티엑스 시대다. 얼마전에 여수를 가는데 역이름은 여수 엑스포역이요 불과 세 시간 안쪽 거리였다. 마산도, 포항도 케이티엑스가 가는데 영영 그런 빠른 기차는 가지 않을 것 같은 곳이 있다. 장항선 길이다.

장항, 하고 발음하면 아주 느린 기차가 멀리 갈 때까지 가서 멈추는 느낌이 난다. 천안에서 충남 내륙을 가로질러 서해안 아래쪽으로 내려간 끝에 바로 장항이라는 마지막 행선지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대로 끝이 아니다. 장항에서 전북 익산으로 통하는 기찻길이 열린지 오래, 지금은 `g-트레인`이라는 관광열차가 이 길을 따라 장항, 익산, 서대전역을 간다. 장항은 오랜세월 장항선 기찻길의 마지막 종착지였다.

서울에서 이 장항선은 호남선과 함께 용산에서 출발한다. 오로지 무궁화호, 새마을호만 다니는 오래된 철길은 천안역까지 가서야 경부선과 갈라져 서쪽으로 향한다. 아는 분들은 다 아시지만 천안역은 케이티엑스 역인 천안아산역과는 다르다. 옛날부터 있던 경부선 철길 천안역이요, 여기서 갈라져 아산역 지나 온양온천역과 도고온천역을 차례로 지나간다.

이 장항선 역들이 있는 곳은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 자신의 어릴 적 삶과 관련이 깊다. 예산 결혼식장에서 결혼하신 아버지, 어머니는 지금 같으면 기차로 20분밖에 안 걸릴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도고온천역에서 기차는 실례원역을 지나 예산역으로 가는데, 여기는 역보다 예산 차부가 기억 난다. 내가 공주 살고 대전 살 때 덕산 북문리 외갓집 가려면 버스가 꼭 예산 차부에 섰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냥 계셔도 좋으련만 꼭 어디를 나가시고 나는 아버지 없이 차가 떠날까 한번도 조마조마 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래도 아버지는 어떻게 아셨는지 꼭 버스가 떠나기 전에 돌아오곤 하셨다.

예산역 지나면 삽교역이다. 이상한 역이다. 옛날 이 삽교역에는 수덕사역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고 나는 바로 이 근처에 그 절이 있으려니 했건만 전혀 아니었다. 수덕사는 삽교 지나 덕산 `읍내`(사실은 면소재지였다)도 한참 지난 곳에 있었다. 또 삽교역은 늘 서운케 지나는 역이기도 했다. 옛날에 대전에서 덕산 가는 길은 두 가지. 하나는 기차로 천안 가서 장항선 타고 삽교역까지 가고 여기서 완행버스를 타는 것, 다른 하나는 줄창 버스 타고 예산 지나 삽교 지나 가는 것이다. 기차를 타고 싶은데 어머니, 아버지는 좀처럼 안 타고 버스를 주로 이용하신다. 삽교역 다음은 홍성역이다. 흥선대원군이 손수 썼다는 조양문이 있는 홍성, 만해 한용운의 고향이고 내 절친 최병수의 고향이고 또다른 절친 정연기가 변호사 일을 하는 곳. 며칠 전에도 셋이서 역시 막걸리는 홍성 것이 좋다고 내포 막걸리, 홍주 막걸리를 마시며 요즘 세상 어떻더라고 이야기들을 했다.

이제부터는 조금 더 속도를 내야겠다. 홍성역 지나면 광천역, 여기에는 광천 이모가 살았고, 청소역 지나 대천역에는 대천 이모가 살고 웅천, 판교, 서천 지나 장항역에는 지금 세상에 안 계신 장항 큰이모가 사셨다. 어머니 형제들은 5녀 1남, 그중에 어머니는 넷째, 위로 이모 세분 외삼촌 한 분, 아래로 이모 한 분. 일찍 윤봉길 의사 집안 사람 되어 서울 가 사신 서울 이모 말고는 모두 다 이 장항선에 사셨다.

어렸을 적에 이 장항은 그러므로 세상의 또 다른 끝이었다. 개펄이 넓게 펼쳤고, 까만 게들이 마구 기어다니고, 흙탕 금강 하구 너머로 또 다른 세상이 있었지만 언젠가 딱 한 번 배로 그곳을 구경할 수 있었을 뿐. 이 장항선 끝이 익산역이 되어 호남선에 연결된 때 언제던가? 기차가 금강 드넓은 하구를 거침없이 넘어 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자 내 유년의 신화도 끝났다.

그렇건만 아직도 나는 장항선만 타면 가슴이 뛴다. 정든 세상이 이 기찻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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