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행복, 그 증거 없는 투명함에 대해

등록일 2016-07-15 02:01 게재일 2016-07-15 17면
스크랩버튼
▲ 공강일 서울대 강사

요 며칠 참 모질게도 더운 날의 연속이었다. 날이 이렇게 더운데 자꾸 몇 해 전에 올랐던 마니산이 떠올랐다. 그 때도 이렇게 더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해서 몹시 슬플 땐 수심가와 같은 슬픈 노래로 슬픔을 달랬다. 지독한 더위는 지독한 더위라야 잊을 수 있나보다.

죽을힘을 다해 산을 올랐지만 끝은 보이지 않았다. 망할 산이었다. 필시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게지, 마니산이 망할 것이 아니라 망할 놈은 나였지만, 일단 뱉은 욕이니 주워 삼킬 수도 없고, 더욱이 주워 삼킬 물도 없었다. 으레 있을 법도 한 약수터도, 계곡에 물은커녕, 계곡조차 없는 이런 산에, 왜 온 거지?

7월의 볕은 살갗에 닿자마자 물로 변해 줄줄 흘러내렸지만, 마실 수는 없었다. 물도 없이 말이다, 어쩜 이 산은 돌만 이렇게 많으냐고, 그늘도 지지리도 없이 말이다, 오이 하나를 아껴 먹지 않고 단번에 먹은 것을 후회하며, 물도 없이 말이다, 그늘도 없이, 이런 날 등산을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이를 갈며, 욕을 주워섬기며, 내가 왜 여길 따라와 가지고선, 지금 내가 얼마나….

어라, 정상이네!

물론 이 산에는 정상에도 물이 없었는데, 단군할아버지가 먹던 우물이 있다더니, 우물 입구는 굳게 막혀 있다. 이거야 원. 팔뚝도 우락부락한 아저씨가, 방금 마늘을 먹다말고 뛰쳐나온 호랑이 같은 아저씨가 병에 송글송글 이슬이 맺히는 얼음물을 들고 있었고 난 그 싱싱한 물이 탐이나 겁도 없이, 먹게 해달라고 용감하고 위엄 있게 외쳤다, 그 물병에 맺힌 이슬이라도 먹게 해주세요, 라고 말이다. 생각보다 비굴했나?

호탕한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 물을 내 빈 생수통에, 500℉ 생수통에 무려 반이나 채워주었다. 참 호탕하시기도 하시지. 그 물을 다 마실 수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정말이지 그 소용돌이 같은 더위와 갈증 속에서도, 자랑질이 하고 싶어, 내가 이렇게 대범하게 물을 얻었노라고, 그 건강하고 호탕한 아저씨보다 더 호탕하게 일행들과 물을 나눠 마셨다. 저 아저씨는 등산을 오기 전날 냉동실에서 이 물을 얼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겠지.

그럼 어제 우리는?

물론 그 아저씨만큼 우리 역시 수고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강화도에 도착해 마치 종말이라도 찾아올 것처럼 술을 퍼부었으니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아저씨의 수고는 저 차가운 얼음물이 증명해주지만, 우리의 수고는 탈수, 헛구역질, 입안 가득한 구린내가 말해준다는 것 정도.

아저씨가 우리에게 준 그 물 덕분에 우리는 잠시나마 살아났다. 그 덕에 여지없이 찧고 까불 수 있었다.

“우와! 얼음물을 마셨더니…. 우와! 이 차가운 보리차를 마셨더니 말야…. 더 갈증나!”

`반전놀이`(우리는 이런 말장난을 이렇게 불렀다) 그 놀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제 이 모퉁이만 돌면 말야…. 또 모퉁이야! 와 같이 공분을 사는 것들도 있긴 했지만, 대개는 화기애애했고, 때론 화기`애매`했다. 학교는 다녔으나 졸업장은 없다느니, 경력도 자격증도 있지만 벌써 2년 째 놀고 있다느니, 차를 샀지만 면허증은 없다느니, 남편은 없으나 애는 있다느니, 뭐 그런 것들 말이다.

▲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
▲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

말들 속에서 응당 슬퍼야 할 것들은 무게를 잃고 우리 너머로 흩어졌다.

우리가 당장 해결해야 할 것은 갈증이었기 때문에 그랬을까? 그 원초적인 갈증 앞에서 저마다 가진 삶의 무게는 중력을 무시하고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슬픔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는 이름들이 들어섰다. 산을 내려가 제일 먼저 먹고 싶은 것들의 이름들 말이다. 처음엔 물이었고, 아이스크림이었고, 어제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또 맥주였고, 그다음에도 맥주였다.

하지만 정작 그런 것들을 먹고 나니 이제 갈증이 그리웠다. 참을 수 없게 만들던 그 기갈, 그 속에서 떠올린 이름들, 그 이름들은 실제보다 훨씬 시원했고, 달콤했다. 때로 이름일 때가 더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 듯했다.

그날 우리는 등산은 왔으나 물은 없었고, 물을 마셔도 갈증은 더 했고, 정상에 올랐으나 내려 갈 길은 까마득했고, 카메라는 가지고 왔으나 배터리는 없었다. 우리를 담은 그때의 사진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행복은 분명 증거 없는 투명함만으로도 증거할 수 있는 그런 것이리라.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공강일의 바람의 경치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