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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시인 실종 사건

등록일 2016-07-14 02:01 게재일 2016-07-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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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오전부터 수원 사는 김선향 시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김태형 시인이 그저께부터 행방불명이라네요. 어쩌죠?

-이성혁 씨는 뭐라고 하던데요?

-자기도 모르겠다고, 지금 식구들이 찾고 난리래요.

-그래요?

가만 있자, 그저께라면?

김태형 시인을 우리가 만난 게 지난 수요일 저녁이었다. 그때 합정동에 있는 어느 출판사 지하, 라디오가가라는 작은 홀에서 김선향 시인의 시집 “여자의 정면”(실천문학사) 출간 기념 시낭송회가 열렸다. 김태형 시인도, 이성혁도, 그리고 사월 동인 중에 임지연 씨도, 금은돌 씨도, 강신애 시인도 왔고, 황규관 씨도, 문동만 씨도, 김대현 씨 커플도 왔다.

그 밤에 김태형 시인은 그가 운영하는 출판사 `청색종이`를 통해서 만든 플래카드도 달아 주었고 직접 김선향 시인의 시도 낭송했다. 시를 여유있고도 부드럽게 감정의 강약을 조절하며 낭송하는 솜씨가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낭송회장에서 와인 한두 잔은 했을 테고 뒤풀이 가서도 나쁘지 않게 어울리는 것 같았고, 그 다음날 아무 특이한 일 없었고, 금요일날에도 문래동 있는 청색종이 출판사겸 헌책방에 간다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나갔다고 한다. 아내는 예전에 이런 일이 전혀 없었노라고, 휴대폰도 끊겨 있는데다 아무 연락도 없으니 무슨 큰일이 난 것 같다고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아무 말 못했지만, 나 또한 낙관만큼이나 비관하기 즐겨하는 성격인지라,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 CSI, 탐정 몽크 같은 프로에서 본 온갖 사건들이 다 생각나면서 제발 그런 일이 안 일어났기를 바랐지만, 그렇기는 해도 사태를 좋은 쪽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우선, 그는 요즘 자기가 애지중지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밑천 삼아 문래동 예술인 집합처에 헌책방을 내는 대담한 발상전환을 감행했는데, 이것은 경제적인 형편이 그리 좋지 않다는 징표도 되었다. 오죽하면 책을 내놓겠는가, 하는 것이 책에 대해 유난히 고루한 나의 생각이었다.

또 하나. 1992년에 20대 초반의 나이로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하여 벌써 25년을 시인으로 동치서주하건마는 다른 어설픈 시인들이 행세 꽤나 하는 동안 그의 이름은 아직 대중의 귀에 충분히 익지 못했다. 작년에 나는 그의 시집 “고백이라는 장르”(장롱)를 인상 깊게 읽은 적 있고 그 몇 년 전에는 창비라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출판사에서, 무려 7년만에 “코끼리 증후군”이라는 흥미로운 시집까지 냈건만 대중들에게 그의 이름은 아직 낯선 편이다. 그렇다면 무명의 서러움으로 인한 비관? 정말 큰 일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그는 요즘 들어 부쩍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는 일로 인한 실망감이 깊었다고 했다. 오래 같이 가려니 했던 사람들이 이해관계나 기회를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신의며 의리 따위를 고민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기는 충분하다면 충분하다. 아,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지 말자. 그 친구는 꽤나 낭만적인 사람이던데, 우리 모르는 사이에 감쪽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천리만리 사랑의 도피행각이라도 떠났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그 친구를 흠씬 때려주기로 하자.

아무튼 이 중대 시점에 나라도 한 번 더 전화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 연락두절이라지만 지금의 나로서 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니.

어렵쇼? 그런데 이게 웬일? 신호가 간다. 그럼 또 큰일이다. 범인들은 가끔 실수로 자기가 해친 사람의 핸드폰을 켜보기도 한다는데.

-여보세요?

이건 분명 김태형 시인의 목소리 그대로다.

-김형? 전화가 안 된다던데?

-아. 배터리가 나갔어요. 요즘 자주 그래요.

-그래요? 목소리가 반갑네. 내일 이성혁 선생 청색종이에서 인문강좌 해요?

-그럼요.

-아, 내가 시간 되면 놀러 갈게요.

전화 뚝.

헐. 이게 무슨 극적 반전?

그러나, 반갑다. 살아 있다는 게. 무사하다는 게. 그런 산소 같은 시인은 오래 살아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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