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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과 과메기 그리고 언어의 치맛자락

등록일 2016-06-24 02:01 게재일 2016-06-2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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浦(포)와 串(곶)
▲ 호미곶 `상생의 손`. 더 없이 하늘이 좋은 날, 저 손이 하늘을 움켜쥐고 있다.
▲ 호미곶 `상생의 손`. 더 없이 하늘이 좋은 날, 저 손이 하늘을 움켜쥐고 있다.

□ 호미곶은 어디?

구룡포에서 조금 더 가면 호미곶에 이르게 된다. 포(浦)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으로 `개`라고도 불린다. `곶(串)`은 바다를 향해 뻗어있는 육지를 말한다. 바닷물은 육지를 휩쓸고 들어와 포를 만들고, 육지를 휩쓸고 나가며 곶을 만든다. 포가 있는 곳엔 곶이 있고, 곶이 있는 곳엔 포가 있다. 그래서 포와 곶은 경계가 모호하며 그 이름도 다양하다. 김훈은 한 글에서 “포구들은 대체로 포, 진, 곶, 고잔, 머리, 개, 여, 말, 들, 안, 뿌리, 게미, 배미, 끝, 너머 같은 이름을 달고” 있다고 썼다(`자전거 여행`, 233면).

호미곶이라 하면 우리나라 지도에서 호랑이의 꼬리부분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호랑이의 꼬리부분은 장기반도라는 이름이 따로 있다. 그렇다면 장기반도 전체가 호미곶이라는 말일까? 한 백과사전에 따르면 호미곶은, `경상북도 포항시 장기반도 끝, 영일만을 이루면서 돌출한 곶`으로 되어 있다. 이 설명은 모호하다. `영일만을 이루면서 돌출한 곶`이란 장기반도 전체를 뜻하며, 한편 `장기반도의 끝`이라는 설명은 장기반도 전체가 아니라 그 끝의 특정한 부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것이 맞는 것일까?

`곶`을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바다 쪽으로, 부리 모양으로 뾰족하게 뻗은 육지`라고 되어 있다. 이 설명 역시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크게 보면 한반도 전체가, 작게 보면 장기반도가, 더 작게 보면 `상생의 손`을 둘러싸고 있는 육지가, 부리모양으로 뻗어 있기 때문이다. 백과사전도 국어사전도 도움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이렇게 언어에 집착하다가 다시 언어 속을 떠돌까봐 걱정이다.

□ 과메기와 언어의 바다

과메기라는 것을 몇 해 전에서야 처음 먹었다. 아니 오다가다 멋도 맛도 모르고 먹다가, 그날 처음으로 그 맛에 반했고, 그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제철의 과메기는 찰졌고, 함께 했던 사람들은 흥겨웠고, 11월의 쌀쌀함은 그 열기를 식혀주었다.(이제 겨우 유월인데 벌써 과메기 먹을 생각을 하고 있으니, 올해 여름은 더없이 길고 더울 것 같아 걱정이다.)

과메기를 먹으며, 문득 과메기가 어쩌다 과메기로 불리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갑작스럽고 엉뚱한 질문에 사람들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는 듯 냉랭했다. 이 `썰렁`한 분위기를 누군가 반전시켜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는데, 그 때 한 분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 분은 배추 위에 과메기와 다시마 그리고 마늘과 고추를 느긋하게 얹으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저는 이 배추가 왜 배추인지도 모릅니다.”

그 말 덕분에 사람들은 웃을 수 있었고, 당혹스러운 분위기도 어느 정도 수습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랫동안 그날의 상황에 머물러야 했는데, 그 분의 말이 내 궁금증까지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오히려 더 많은 물음을 낳았다. 그 물음들은 이렇다.

우선 왜 과메기를 과메기라고 부르는지가 여전히 궁금했다. 19세기의 이규경(李圭景 : 1788~1863)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算稿)`에서 과메기는 `관목어`에서 유래한다고 밝혔다. 국어사전에 `관목`은 `말린 청어`라는 뜻으로 등재되어 있다. 청어나 꽁치를 말릴 때 눈을 꼬챙이로 꿰어서 말렸기 때문에 눈을 뚫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관목어(貫目魚)라 불렀다고 한다. 이 `관목어`를 자꾸 발음하다 보니, `관`의 `ㄴ`은 탈락하고 `목`은 메기가 되었다는 것. 억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아주 수긍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다음 물음으로 넘어간다.

▲ 공강일<br /><br />서울대 강사
▲ 공강일 서울대 강사

그렇다면 배추는 어쩌다 `배추`가 되었나? `숭채`에서 파생되었다는 설명도 있고, `백채`가 변하여 배추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마늘은? 고추는? 다시마는? 어쩌다 이것들은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나? 이제 그 궁금함은 자꾸 자라났고 이름의 모든 근원들이 궁금해졌다. 이름 아닌 것이 없다. 심지어 `물음`조차 이름이며, `이름`조차 이름이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다. 모든 것들은 이름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는 말이 필요하고, 말을 뱉어내기 위해서는 이름이 있어야 한다. 말은 이름을 필요로 하고, 이름은 말을 필요로 한다. 말 없는 이름이 존재할 수 없고, 이름 없는 말이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이름들이 낯설었고 낯선 언어를 말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언어의 바다에서 언어가 포를 만들고 곶을 만들 때까지 표류해야만 한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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