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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의사님

등록일 2016-06-23 02:01 게재일 2016-06-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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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식구 중에 갑자기 아픈 사람이 있어 병원에 갔다 썩 유쾌하지 못한 일을 겪었다. 우선 응급실을 찾았더니 담당 의사, 마스크도 벗지 않고 이마에 주름을 잡고 눈살을 찌푸리며 마구잡이로 앉을 곳도, 누울 곳도 없다고 짜증을 냈다.

뭔가 소리가 잘 안 들려 다시 물었더니 옆에 있던 간호사, 나이가 적지는 않은데 왜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느냐고 핀잔을 준다. 마스크 쓴 그분, 교수시라면서. 응급실에 그 시간에 환자 맞고 있는 젊은 사람이 교수 신분인지 아닌지 알 바 아니지만, 교수면 다냐?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지경이다.

다음에는 진료실. 다시 수속을 밟아 한참을 기다리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의사 분 환자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몇 마디 툭툭 던지듯 묻는다. 말을 어찌나 아끼시는 분인지 몇 분 앉아 있는 동안에 서너 마디 앞뒤 짤린 말씀을 얼마나 귀하게 얻어들었는지 눈물이 쏙 빠질 지경인데 입도 가리지 않고 하품을 쩍쩍 하신다. 참, 훌륭한 의사분이셨다.

몸보다 마음이 몹시 더 지쳐 씁쓸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오는데, 가만 있자, 어느 좋은 의사 분 만났던 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난다. 어디, 누가 있었던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의사 분은 공교롭게도 집 근처에서 오랫동안 병원을 열어놓고 계신 한의사 분이다. 이 한의원은 일단 붐비지 않아 좋다. 언제 가도 환자 손님이 한 사람이나 기다리고 있을까. 병원 설비도 구식이고 의사까지 연세가 여간 많지 않아 그런지 환자들도 새로운 곳으로 몰려가고 없다.

덕분에 이 연만한 의사님은 아주 느긋하게 문진도 하고 진맥도 하고 침도 놓아 주신다. 뭣보다 한약 지어 먹으라는 소리를 일절 하지 않으신다. 늘 침만 맞으러 가도 얼굴 한 번 찌푸리는 법 없는데, 그 침이 어찌나 센지 맞을 땐 정신없고 맞고 나면 확실히 효과가 크다. 첫날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왔느냐고 물으시기에 이만저만 하다고 말씀 드렸다.“저런, 많이 힘드시겠네. 어서 나아야지. 젊은 사람이.” 하고 추임새를 넣으시는데, 그 말씀이 정말 아픈 사람 심정을 알아주는 듯했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의사 분은? 서울 바로 밑 분당에 있는 모모한 병원의 외과 수술의 김 아무개 선생이시다. 그 분은 내 경험에 따르면 정말 명의라 해야 한다. 지금부터 벌써 7,8년 전에 아버지가 아프셨다. 세상에, 위와 신장에 암이 발병하셨는데, 벌써 2기 하고도 반이 넘었다 했다. 무조건 일단 대학로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언제 예약 순번이 돌아올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고민 끝에 선배 교수께 상의 말씀을 드렸다. 그 분 어머니께서 역시 암에 걸리셨는데 어디서 어느 분한테 수술을 받고 완치 되셨다는 말씀을 들은 기억이 났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 그렇게 해서 가게 된 곳이 그 분당의 병원이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도 별로 없고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흰 네 벽 한쪽을 철제 책상이 덜렁 차지하고 있는데, 거기 키 큰 의사 분이 환자 맞이를 했다. 친절함도 없지만 업신여김도 없고 그냥 평상심으로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런데 그분이 바로 명의 선생이셨다. 선배 선생님의 어머니도 그분께 받아서 완치, 나의 아버지도 지금까지 재발이 없으니 좋고, 무엇보다 바로 그 1년 후에 내 첫째 동생이 대장암에 걸린 것을, 바로 그 똑같은 코스를 밟아 지금 멀쩡한 것이다.

고마운 의사분이 또 계셨나 생각해 본다. 한 분 더 생각났다. 내가 거의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분인데, 언제나 늘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신다. 항상 내 해당 차트를 살펴보고 무슨 변화가 있는지 찬찬히 묻고 더도 덜도 아닌 처방을 내려준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처방을 조금씩 바꾸며 환자의 몸 상태를 고려하는 그분께 나는 의사로서의 본분을 정확히 지키고자 하는 인생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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