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위현혜(素以爲絢兮)란 본래 비단 바탕에 채색한다는 말인데 제자 자하가 “흰비단으로 광채를 낸다”라고 잘못 안 것이다. 공자는 자상히 일러준다. “그림 그리는 일은 먼저 바탕이 있는 뒤에 색을 칠해 다듬는 것이다” 자하는 “예 알겠습니다. 예(禮)가 뒤라는 말씀이군요”라는 답에 공자는 크게 성숙한 소견에 흐뭇해 하면서 “나를 일으키는 자가 자하로다.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詩)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덧붙인다. 상상만해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요 수준높은 예술 드라마이다.
내 자신도 숱하게 많은 한자 중에서 좋아하는 자 몇 자 중에 이 글자가 포함되기에 차실 이름이나 인연되는 가까운 사람들의 호에 한 두번 써본 경험도 있다. 흰 색깔 본디 라는, 말 꾸밈없는 그 자체라는 순수. 지금 나의 붓글씨의 형상도 기울였다가 바로 세웠다가 모았다가 해체 했다 억지 춘향격으로 다듬어져가고 있다. 언제쯤이면 나의 본래 성품 그대로 나타날 수 있을까. 혹시 위선과 가식된 포장은 아닌지 늘 살펴본다.
찻자리에 가끔 초대 받아가면 첫 마디가 “비싼 차입니다. 얼마주고 샀다”라는 말에 그만 차의 맛이 사라져버리고 어쩔줄 몰랐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였다. 먼저 차의 성품이 바탕되어야 차맛이 온전할 것인데 같이 한 시간이 아쉽고 물로 배만 채운 격이 되어버린다.
`회사후소`에서 한자의 어원 상으로 본디 소(素)는 전서에서 사(絲)와 석(昔)으로 이루어져 있어 석은 처음초(初)와 통하여 처음의 뜻이며 누에고치에서 갓 자아낸 원래 하얀실이란 뜻에서 본디 바탕, 희망, 정성, 평상심 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장식없는 거문고를 소금(素琴)이라고 하며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소면(素面), 반찬없는 음식을 소찬(素餐) 이라고 한다.
또한 노자 도덕경의 견소포박(見素抱撲)이라는 단어도 우리에게 소박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삶은 한정된 시간을 목숨을 담보로 얻어낸 절대적인 것이다. 짧은 두레박으로 깊은 우물의 물을 길러 올 수 없기에 바탕을 잘 다듬어야 생명력이 길고 오래간다. 노년기의 얼굴과 건강도 젊었을 때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듯 억지로 끼어 맞추지 말아야 한다. 바탕이 좋은 사람을 보면 따라 하고 싶고 그 삶이 탐나고 닮고 싶다.
착근을 잘한 벼는 바람에 흔들리지만 뽑혀지지 않고 실한 열매를 맺는다. 튼튼하고 좋은 바탕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길 바랄 일이며 회사후소의 깊은 뜻을 다시한번 안아 새기는 일은 삶의 바탕에 성심을 다하는 일이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